시간을 들여 빛을 내는 요리, ‘계향각(桂香阁)’ 신계숙(申桂淑) 셰프

신계숙 셰프는 시간과 인내로 완성하는 청나라 황실 요리의 정신을 표현하고 전수하며, 자신의 지난 여정이 담긴 대표 디시들로 음미할수록 깊어지는 맛의 레이어와 새로운 중식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이다. ‘흑백 요리사 시즌 2’에서 중식 폭주족으로 새로운 세대의 팬덤을 만들어 낸 신계숙 셰프. 그의 요리를 관통하는 문장은 언제나 이 말로 귀결된다. 강한 불과 즉각적인 쾌감을 중시하는 현대 중식의 흐름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생각하는 요리’를 고집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만끽하는 요리사의 삶을 지향한다.

불 앞에서 사유하는 중식의 시간

불 앞에서 반복되는 동작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사유의 시간이며, 조리 과정은 매번 자기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긴 호흡의 여정이다. 그의 요리는 언제나 빠르지 않다. 오히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거운 웍을 가볍게 들어올려 조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중문과 1학년이던 대학 시절, 한자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던 그는 교수의 권유로 연희동 중식당 ‘향원(香苑)’의 문을 처음으로 넘었다. ‘중국은 요리 또한 연구할수록 끝이 없는 세계다’란 말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이렇게 1987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식 인생은 어느덧 39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부터 요리에 재능을 느꼈던 건 아니었지만, 요리가 싫거나 지겹다고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중식’이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철학과 태도의 세계임을 깨닫게 됐다.

가구부터 집기, 조도에 이르기까지 빈티지한 중화풍 무드가 이국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향원에서 보낸 8년은 그에게 ‘집중’의 의미를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힘들었던 기억도 또렷이 남아 있지 않다. 매 순간 요리에 온전히 몰입했기에 고통은 흔적으로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중식의 대모라 불리는 이향방 셰프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여성 중식 셰프로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도 있었지만, 그는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한 태도를 택했다. 잘해내는 것보다 성실하게 반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그가 중식에 입문해 배운 첫 번째 미덕이었다.

신계숙 셰프의 대표 디시 중 하나로, 바삭하게 튀긴 닭날개를 산초와 고추에 볶아 중독성 있는 대륙의 매운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대만에서 배운 요리와 삶의 균형, 그리고 다시 책을 택한 시간

당시 요리를 더 깊이 배우기 위해 그가 향하기로 마음 먹은 곳은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이었다. 시대 상황상 수교 국가를 택해야만 했던 ‘외교적 한계’ 즉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선 요리와 삶이 공존하는 그 자체의 경험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엔 후페이메이(대만에서 굉장히 유명한 요리사이자, 1세대 TV 요리 프로그램 제작자 겸 진행자) 선생에게 사사를 받으며 이론을 익히고, 낮엔 정치대학 근처 중식당 ‘용길’에서 몸으로 요리를 배웠다. 

불 앞에서 반복되는 동작을 통해 오랜 사유의 시간을 보낸 그의 요리엔 감각적 맛의 차원을 넘어선 인내와 고뇌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요리를 하며 생활하고, 생활 속에서 요리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이 시기의 기록은 ‘화무란’이란 아이디로 운영하던 블로그 <신계숙의 중국 요리>에도 빼곡히 남아 있다. 그가 배우고 가르치는 요리를 비롯, 여행을 통해 만난 식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나온 과거와 마주하는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귀국 후 그는 곧바로 레스토랑을 열지 않았다. 대신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다. 중문과 출신으로 문자 해독이 가능했던 그는 교육 현장에서 요리를 가르치며 논문을 쓰고, 고조리서를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글 속에서 음식을 찾고, 음식 속에서 다시 글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애정이 깊이 묻어나는 ‘다진 홍고추 생선찜(剁椒魚)’ 을 정성스레 건네는 그의 손길에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객을 향한 진심이 느껴진다.  

그가 유독 깊이 빠져든 책은 중국 청대 문인 ‘원매(袁枚)’ 선생의 고조리서, 『수원식단(隨園食單)』이었다. 한국에 다시 정착한 뒤, 친구가 건네 준 열 권의 책 중 유독 이 책이 마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안엔 400여 가지 요리와 요리사가 꼭 알아야 할 것 20가지, 요리사가 하면 안되는 것 14가지가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원식단(隨園食單)』을 반복해 읽고 연구하다 결국엔 직접 번역본을 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요리는 손의 기억이지만, 이와 동시에 머리와 마음의 기록이란 사실을 확신하게 된 시기였다.

청나라 황실 요리를 재현하는 ‘계향각’에선 근본을 다시 세우려는 철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각 디시를 이해하고 표현해낸다. 

이처럼 신계숙 셰프 요리의 중심엔 청나라 황실 요리가 있다. 현대 중식이 강한 불맛과 즉각적인 맛을 중시한다면, 황실 요리는 시간과 인내를 주재료로 삼는다. 완자 요리인 ‘사자두(사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여섯 시간을 은은하게 끓이고, 육수는 고아낸 뒤 맑은 정수만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을 원형 그대로 따르기 때문인지 ‘요리는 재촉하지 않을수록 깊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됐고, 이것이 곧 그의 주방을 지배하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빠른 결과보다 올바른 과정을 택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그의 요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오늘의 요리, 여정의 기록

이날 선보인 네 가지 요리 역시 그의 지난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두 가지는 청나라 시대의 전통 기법을 그대로 따랐고, 나머지 두 가지는 중국 여행 중 직접 맛보고 인상적이었던 요리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것이었다. 

하루 숙성한 우럭을 사용해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내, 식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 잔상이 남는 ‘다진 홍고추 생선찜(剁椒魚)’

먼저 ‘다진 홍고추 생선찜(剁椒魚)’은 호남성 스타일로, 머리가 큼지막한 ‘팡터위(후난 지역에서 나오는 머리가 큰 민물 생선으로 몸통에 비해 머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胖头鱼)’란 생선을 주재료로 삼아, 고추를 다져 삭힌 양념을 얹어 찌는 요리다. 그는 현지에서 이 요리를 맛보자마자 매료돼, 해당 식당에서 일주일 동안 일하며 조리법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혔다. 지금도 신계숙 셰프는 해마다 220kg에 달하는 고추 양념을 만들어 사용할 만큼 이 생선찜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엔 이 디시의 메인 식재료인 ‘팡터위’가 없어 살과 지느러미, 뼈의 비율이 이와 가장 유사한 우럭을 주로 사용하는데, 특히 하루 숙성한 우럭을 사용해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개업 초기엔 당일 잡은 생선을 고집했지만 사후 강직으로 원하던 조직감이 나오지 않자, 결국 하루 숙성한 뒤 쪄내기 시작했고 그러자 비로소 원하던 맛과 풍미를 낼 수 있었다.

얼얼한 감칠맛과 함께 닭을 먹기 편하게 조각내 술안주로도 그만인 충칭 스타일 ‘라즈지(辣子鸡)’ 

충칭 스타일 ‘라즈지(辣子鸡)’는 중국 충칭 여행 중 가락산(歌乐山)의 ‘임중락(林中樂)’이란 레스토랑에서 맛본 한 접시에서 시작됐다. ‘라즈지’만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문점이었는데, 그 맛이 너무 인상 깊어 두 포션의 요리를 포장해 한국까지 들고 왔을 정도였다. 이후 반복해 먹어 보며 양념의 조합과 닭의 부위를 집요하게 연구했고, 가장 균형 잡힌 지방과 맛을 가진 조합으로 최종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맥주 한 잔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이 요리는 지금도 젊은 세대의 테이블 위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최고 인기 메뉴다.

2시간 동안 찐 오리에 220°C로 예열한 기름을 계속 끼얹어 주는 과정을 거치는 ‘팔보 오리(蒸鸭)’

다음으로 ‘팔보 오리(蒸鸭)’는 중국에선 국가적 연회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요리다. 오리의 배를 가르지 않은 채 뼈와 살을 발라내 껍질 자체를 요리의 그릇으로 삼고, 찹쌀과 표고, 죽순, 생새우살, 오리와 닭가슴살, 연밥, 마른 새우살 등 여덟 가지 재료를 채워 두 시간 동안 쪄낸다. 조리 전 오리 한 마리엔 기름, 살, 뼈가 각각 3분의 1씩 비율로 이뤄져 있는데, 조리 후엔 750cc의 기름이 빠져 담백한 맛만이 오롯이 남는다. 발골부터 말리기, 속을 채우는 과정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기 때문에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귀한 음식이다. 

‘팔보 오리(蒸鸭)’는 오리 발골부터 담음새에 이르기까지 요리하는 전 과정에서 중식 역사의 품격과 위엄이 전해진다.   

‘동파육(东坡肉)’은 그의 요리 철학을 가장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요리 중 하나다. 소동파(蘇東坡)가 유배지 황주에서 남긴 시를 읽고 감명 받아, ‘재촉하지 않는 요리’의 미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것이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놓는 ‘동파육(东坡肉)’ 한 접시엔 신계숙 셰프의 변함 없는 열정이 살아 숨쉰다.

몇 해 전 여름, 신계숙 셰프를 따라 청두로 떠나 소동파(蘇東坡)의 ‘동파육(东坡肉)’, 진 마파두부(청두에서 마파두부가 탄생한 원조 노포로, 1862년 창업해 100년 넘게 이어온 정통 쓰촨 맛집)의 ‘마파두부(麻婆豆腐)’를 맛 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시를 읊으며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감흥 속에서 이어진 미식의 시간은 그 자체로 풍류였다. 

이렇게 신계숙 셰프가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완성한 동파육은 최소 6시간을 품는다. 한 시간씩 두 번 삶아 핏물을 제거하고 양념을 넣어 다시 네 시간 동안 은은한 불로 끓인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정성 가득한 동파육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또는 티라미수를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듯 녹아 없어지는 식감이 일품인, 계향각의 천하일미 ‘동파육(东坡肉)’ 

배우고, 의심하고, 다시 묻다

그는 말한다. 요리는 끊임없는 시도와 의심, 그리고 다시 묻는 과정이라고.『수원식단(隨園食單)』속 가르침처럼, 배우고 듣고 직접 해 본 뒤 의문이 생기면 다시 스승에게 묻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그는 세속적인 유혹에서 점차 멀어질 수 있었고, 오롯이 주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수원식단(隨園食單)’에서 다루는 요리를 재현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내포된 철학까지 온 마음을 다해 계승하고 전수하는 신계숙 셰프의 모습에선 숭고함마저 엿보인다. 

그래서 그는 수년째 음식 종사자와 셰프들을 대상으로 공부 모임(class)을 이어오고 있다. 음식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 편집장과 콘텐츠 디렉터,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끌 젊은 셰프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나아갈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EBS 방송을 통해 만난 세계 각국 및 국내 곳곳의 여러 음식들 역시 그의 시야를 넓혔다. 섬진강 은어를 촬영하던 날, 물살에 몸을 맡긴 은어를 바라보며 ‘내가 은어가 되지 않으면 은어를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세계 테마 기행’,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흑백 요리사 시즌 2’까지. 그는 자신의 요리 인생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시 도마 위에 올리며, 이러한 긴장감을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세월의 무게감 있는 계향각의 공간에선 청나라 황실 요리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중식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아쉬움도 전한다. “쉽게 만들려다 보니 맛이 점점 천편일률적으로 평준화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중식은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각 재료가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서도록 돕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색소폰으로 부는 음율 한 자락, 인생이 담긴 시 한 구절, 거침없이 달리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랑하는 그는 봄이 오면 다시 길 위에 오르려 한다. 양양, 양평을 시작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시간은 또 다른 사유의 시작이다. 불 앞에서, 책 앞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이어지는 그의 사유는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신계숙 셰프의 요리는 오늘도 그렇게, 시간을 들여 빛을 내고 있다.

친숙함 너머 신계숙 셰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려면, 계향각을 찾아 그녀의 요리를 직접 음미해 봐야 한다. 

 

단락

Writer 김혜준(Hyejoon Kim)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Photographer 오충근(Choong-keun Oh)_ studio. choo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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