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한국까지, 크리스티안 바우만 셰프(Kristian Baumann)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구며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제게 기회가 있었다면, 더 평범한 삶을 택할 수 있었을까요? 전 지금도 꽤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크리스티안 바우만 셰프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생후 4개월 만에 덴마크 가정으로 입양됐던 그는 코펜하겐 외곽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엔 한 도시에서 강도를 만나 칼에 찔리는 사고를 당한 적도 있다. 그때 상처가 2mm만 더 깊었다면 왼손의 감각을 완전히 잃었을지도 모른다.
2016년 여름, 그의 레스토랑 ‘108’은 오픈한지 단 7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2020년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2023년, 그가 다시 연 레스토랑 ‘KOAN’은 오픈 10주 만에 미쉐린 2스타를 얻었다.
“아마도 저는 요리 외에 다른 길을 택하진 않았을 거예요. 인생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방향 따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모든 경험에 감사하고, 또 자랑스러워 하고 있어요. 이러한 과정 속에 겸손함 역시 배우게 됐죠.”
불향 입힌 생강과 구운 김, 한국 고추와 오미자로 만든 소스까지 한국적인 색채가 가득한 KOAN의 디시
따르던 길에서 자신의 길을 세우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기숙 학교 주방에서 시작됐다. 이후 전문 요리 학교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코펜하겐으로 향해, 개업 초기였던 ‘노마(Noma)’에서 인턴십을 하며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와 첫 인연을 맺었다. 또한 그는 크리스티안 풀리시(Christian Puglisi) 셰프가 설립한 ‘렐레(Relæ)’ 레스토랑의 첫 일원이 되기도 했다.
‘노마(Noma)’는 발효와 지역성을 하나의 철학으로 끌어올린 곳이며, ‘렐레(Relæ)’는 계절성 및 제철·유기농 식재료를 중시해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남달랐다. 이렇게 그는 세계적인 덴마크 레스토랑 두 곳에 몸 담으며, 기존과 다르게 사고하는 법을 익혔고 여러 셰프들로부터 독창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영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울 만한 사람 밑에서 일해 보는 거예요. ‘어떻게 따를 것인가’를 먼저 배워야죠. 그리고 비전과 통찰력을 가진 이들과 일하다 보면 그들의 생각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길을 점점 찾아가는 거죠.”
연분홍빛 봄을 형상화한 고운 빛깔의 ‘스프링 만두’
그는 몇 년 간 렐레에서 일한 후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어 2016년 레드제피와 협업해 ‘108’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처음으로 헤드 셰프 자리에 올랐다. ‘108’은 ‘노마’의 자매 레스토랑으로,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하이 퀄리티 노르딕 퀴진을 중심으로 단품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었다.
당시 그는 뛰어난 인력은 물론 창의적인 실험과 개발에 몰두할 여건을 두루 갖춰,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작업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소규모 농장과 협력한 레스토랑 전용 밭을 일종의 ‘작물 재배 실험실’로 활용하며 나름의 크고 작은 성과를 맛봤다.
“당근이나 양파만 심는 게 아니었어요. 5m 반경 구역은 특정 허브, 바로 옆으로는 다른 채소를 심어 다이내믹하게 구성했죠.” 사실 이렇게 각양각색 작물을 키우는 일은 관리도 쉽지 않았고, 시장 반응을 장담할 수도 없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서 충분히 희열을 느꼈다.
이렇게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는 연구는 ‘108’만의 풍미 철학을 다지는 기반이 됐다. 미소, 어장 등 수많은 발효 소스를 직접 만들며, ‘108’만의 발효 지식 체계를 쌓아갔던 것이다.
“머릿속에 이런 정보와 지식, 시스템 등이 구현되면, 여러 기술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그는 ‘108’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본래 혈통과 요리의 연결성을 고민하며, 한국적 풍미를 노르딕 퀴진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본격적으로 미식을 탐구하며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이 여정은 훗날 ‘KOAN’을 오픈하는 데 터닝 포인트이자, 중심축이 됐다.
바우만 셰프는 ‘108’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레스토랑 전용 밭에서 여러 작물을 실험 재배한 건 물론 다양한 발효 소스도 수제로 만들었다.
낯선 고향, 한국에서 다시 나를 찾다
바우만 셰프는 젊은 시절 프랑스 남부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불행히도 그곳에서 칼을 든 강도를 만나 저항 중 손을 관통한 칼이 가슴까지 파고드는 일을 겪었다. 이후 일주일 간 침대에 누워 회복에만 전념해야 했고, 한동안 마음 깊숙이 분노와 불안이 일어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훨씬 더 끔찍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슬프고 무섭고 화가 났어요.”
코펜하겐으로 돌아간 그는 삶의 속도를 늦춰 보려 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일에 몰두했고, 새벽부터 시작해 주 6일을 근무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분노와 열정을 모조리 요리에 쏟아부었죠. 치유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요. 여기서 제 뿌리인 한국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죠. 강도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제 인생 전반과도 관련이 있어요.”
한국을 방문하기로 마음 먹은 뒤, 친구들의 안내를 따라 낯선 고향을 차근차근 둘러봤다. 그중에서도 식재료 외에 유독 매력적이었던 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식문화였다. 궁중 요리를 비롯해 돼지고기와 소고기에 집중한 구이 문화, 지역마다 다른 향토 요리, 어촌의 제철 음식, 그리고 사찰 음식까지 각기 다른 색깔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 전통 다식을 오마주한 듯한 라즈베리를 곁들인 쫀득한 체리 찹쌀떡
그중 서울 근교 사찰에서 맛본 한 끼는 가히 인생 최고의 식사라 할 만했다. 100% 채식에 파와 마늘조차 들어가지 않았지만 놀라우리만치 깊은 맛을 냈고, 지금도 문득 생각날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또 그때 만난 정관 스님과의 인연은 바우만 셰프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정관 스님은 백양사를 지키는 사찰 음식 대가로, 자연과 식재료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전 세계 셰프들에게 만물을 품는 요리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어느 날 바우만 셰프는 사찰에서 스님과 함께 점심을 준비하며 스님이 직접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다양한 장들을 맛봤다. 이어 두 사람은 산나물을 채집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스님은 나지막이 그에게 친부모를 찾고 있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스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아요, 내가 엄마가 되어 줄게요”라고 따스한 말을 건넸다. “바로 그 순간, 뿌리 깊이 연결되는 안정감을 얻었어요”라며 그는 당시 감회를 밝혔다.
실제로 ‘KOAN’을 오픈한 것도 이렇게 내면의 평화를 따라간 여정이었다. 그는 덴마크에서 자란 한국인 입양아로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일반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에요. 덴마크 가족 사이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제 한국 혈통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갖고 있었어요.”
한편 그는 가정과 일터에서 요리할 때, 자신의 사고 체계가 전혀 다르게 작동함을 깨달았다. 가족을 위해선 오직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요리에 임하게 되고, 주방에선 기술적이고 체계적인 마인드가 자연스레 앞선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레스토랑 문을 여는 순간부터는 일로서 요리를 대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이 두 가지 세계를 어떻게 하나로 녹일지 고민했고, KOAN을 통해 조화로운 해결점을 찾으려 했다.
“여기는 덴마크와 한국이 만나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제게는 이런 선언이기도 하죠. 이곳이 바로 ‘나’ 자신 그대로다.”
‘KOAN’은 덴마크와 한국이 만나는 공간으로, 바우만 셰프가 살아온 배경과 삶을 드러낸다.
KOAN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다
바우만 셰프는 ‘KOAN’을 오픈하기로 결심하면서 ‘108’ 레스토랑 운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단 일주일 만에 팝업 형태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제 의지를 표명하는 터닝 포인트 같은 때였죠.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레스토랑을 빚어내고 있다!’라고 선언하면서요. 정말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요리의 표현 방식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국이란 자신의 문화적 뿌리도 깊이 탐색했다. 이러한 과정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흰 배추 김치’ 디시다.
꽃잎처럼 정교하게 칼집을 낸 새하얀 백김치 위로 허브와 식용 꽃, 엘더플라워 오일을 더해 장식했고, 이 디시에 가장 잘 어울릴 그릇은 한국의 한 갤러리에서 찾았다.
그것은 이택수 도예가의 작품으로, 그는 깨진 도자기의 존재 자체를 사유의 뿌리로 삼아 당·송·원·명·청 시대 도자의 유물 파편을 작품으로 활용한다. 이렇게 지난 역사의 조각을 오늘의 백자와 결합해 다시 완전한 완(完)으로 치환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거칠음과 섬세함을 공존케 하면서 미학적 묘미도 추구한다. 이를 통해 무한한 생명력과 삶의 반복성을 드러내며, 동양의 사유 체계 안에서 도예의 순환과 관계를 예술로 승화하고 있다.
바우만 셰프는 한국 방문 당시, 갤러리에서 마주한 도자 시리즈의 작품명이 ‘재생’임을 알게 됐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내면 상태와 작품이 하나로 이어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에게 이 도자기는 KOAN의 정신을 담을 상징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KOAN이 자리한 현 위치엔 한국 정부가 덴마크에 기증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 전쟁 중 의료선을 파견한 덴마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표식이다.
“레스토랑 자리로 30곳을 넘게 둘러봤는데, 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손을 잡고 ‘여기야, 바로 여기야!’라고 외쳤죠.” 온 우주가 그의 바람에 답하듯 우연의 연결고리는 계속됐다. “이곳에 레스토랑을 연 건 정말 운명이었을지도 몰라요.”
바우만 셰프는 이택수 작가의 ‘재생’ 시리즈 작품에 ‘흰 배추 김치’ 디시를 담았다. 이것이 곧 그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KOAN의 여정이다.
덴마크와 한국, 문화적으로 조우하다
KOAN의 요리는 덴마크와 한국의 양 문화 사이에서 공명할 수 있는 미각의 언어를 택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식재료 ‘쌀’이다. 바우만 셰프는 쌀에 대한 한국의 정서와 기억을 어떻게 요리에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실제로 KOAN의 코스엔 쌀 요리 2종이 연달아 등장한다. 첫 번째는 담백하고 순수한 백미에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제철 반찬을 곁들여 낸다. 두 번째는 ‘누룽지’에서 영감을 받은 죽으로, 한국에서 밥솥 바닥 누룽지에 물을 부어 먹는 것에서 착안해, 밥을 더 바삭하게 구운 뒤 육수를 넣어 죽처럼 끓였다. 여기에 북유럽산 식재료도 더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여러 겹의 풍미를 쌓아 올렸다.
KOAN의 한국적 요소는 단지 쌀밥의 해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 멸치, 대추 등 한국 대표 식재료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편 그는 최근 몇 년 간 덴마크 다이닝 업계에서 발효 기술을 다양하고 정교하게 탐구하면서, 유산균 발효의 범주를 넘어 실험과 연구의 폭을 더 넓혀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한국 요리와의 접점도 다수 발견하게 됐다. 즉 양쪽 식문화가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진화를 거쳐왔기에 자연스럽게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유럽 식재료의 순수함과 깊이 있는 풍미는 한국 식재료의 맑고 섬세한 맛과 유연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두 세계의 특징을 밸런스 있게 연결할 수 있다면 아주 흥미로운 요리가 나올 수 있겠죠.”
이뿐이 아니다. 주방 운영 방식에도 ‘균형’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KOAN은 그저 신생 레스토랑이 아니라, 바우만 셰프가 바라는 이상적 일터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을 바우만 셰프가 재해석한 ‘KOAN’의 쌀 요리
모두가 지치지 않는 주방 문화
바우만 셰프는 좌석 수 80석의 ‘108’ 레스토랑에서 좌석 수 23석의 ‘KOAN’을 이끌며 레스토랑 운영 방식을 근본부터 바꿨다. 그는 먼저 건강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저는 늘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일 중독자라고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일할 수 있다고 모두가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플레이팅을 일례로 설명했다. 자신에겐 직관적으로 가능한 작업이지만, 팀 내 소수만이 정해진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건 문제라는 것이다. 즉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에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KOAN의 영업 및 운영 방식은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레스토랑은 주 4일제로 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만 오픈하며 한달에 단 하루, 특정 토요일에만 추가로 문을 연다. 또 테이블 회전 없이 단일 서비스로만 운영된다.
“이런 선택은 사실 쉽지 않았어요. 식사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싸게 팔면 더 쉽고, 장사도 더 잘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길을 택하고 싶지 않았어요.”
주변 동료 중엔 그의 가격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가격을 매기면 아무도 안 올 수 있어”라고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심플했다. “괜찮아.”
이것이야말로 진짜로 팀을 돌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근무 조건뿐 아니라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까지도 이 방식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요. 2025년 4월 4일 이 자리에서 2주년을 맞았고, 같은 멤버들과 호흡을 맞춘 총 운영 기간으로는 벌써 5년째예요. 저를 비롯해 우리 팀이 늘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팀이 점차 커지면서 과거 몇몇 인력에게 집중됐던 업무 부담도 충분히 분산됐다. 요리는 더 정교해지고 기술 수준도 높아졌지만, 주방의 리듬은 여전히 안정적이다. 때때로 가장 어린 막내 셰프(Chef de Partie)가 밤 9시 반에 퇴근하고, 수셰프는 조금 더 남는다. 그리고 바우만 셰프는 마지막 손님을 배웅할 때까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들이 예전의 저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기뻐요. 저는 새벽 5~6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하고, 주 5.5일에서 6일은 주방에 있었어요. 그때는 그런 삶을 사랑했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경험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팀원들을 위해 지속 가능한 방식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수년 간 주방을 지켜 본 그는 외식업계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1~2% 정도뿐이에요. 대부분 중간에 지치거나 힘들어져 결국 업계를 떠나죠. 그런데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조금씩만 바꾸면 이러한 경우의 수를 차츰 줄여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바우만 셰프는 팀이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는 주방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질문을 끌어안고 자각하며 나아가다
KOAN은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맞이해왔다. 그중엔 입양아도 많았다. 바우만 셰프의 이야기에 이끌려 직접 레스토랑을 찾은 이들이었다. 어느 날 한 부부가 쌀 요리를 먹던 중 반대편에 있었던 남편이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테이블이었어요. 처음엔 우리가 뭔가 잘못한 줄 알았죠”라고 바우만 셰프는 그날을 회상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었다. 덴마크 가정에 입양될 때 이미 다섯 살 정도였고, 어머니가 밥을 지어 주시던 기억도 또렷이 남아 있었다. KOAN의 쌀 요리가 그 기억을 불러냈고, 결국 그는 참았던 감정을 쏟아낸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만, 해외 입양아의 경우 이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하다. 바우만 셰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고난 외모와 자라온 환경 사이의 간극은 늘 ‘어딘가에 끼인 존재’처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덴마크에선 외모가 달랐고, 한국에선 언어와 성장 배경이 달랐다.
“아마 평생 이해하려 노력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KOAN이 더욱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곳에선 한 가지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으니까요. 입양아도, 혼혈도 괜찮다는 것. 어느 곳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자라고,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다는 건 단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요.”
불교 선종에서 말하는 ‘KOAN(공안 혹은 코안)’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질문과 답변을 통해 자각에 이르는 수행 방식이다. 해답을 구하기보단 스스로 질문과 마주하며 번뇌하고, 이를 통해 사유를 내려놓으며 직관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가 이 이름을 좋아하는 건 열린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에요. ‘KOAN’은 질문 속에서 살아가게 하죠. 이런 의미에서 저와 꽤 잘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손님들과도 이 여정을 의미 있게 나누고 싶고, 손님들 역시 이 여정의 일부로 참여해 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