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바를 짓다, 임병진 오너 바텐더의 ‘Bar Cham’

임병진 오너 바텐더는 ‘공감’을 중심에 둔 철학으로 한국적 미감을 칵테일에 녹여내며, ‘Bar Cham’을 한국 바 문화의 상징적 공간으로 발전시켰다. 이제 그는 파인 다이닝 셰프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서울 경복궁 돌담길의 밤 공기는 언제나 조금 느리게 흐른다. 이러한 무드 속에 ‘Bar Cham(바 참)’의 문을 열면, 묵직한 나무 향과 은은한 빛이 맞아준다. 임병진 오너 바텐더는 이 공간을 ‘공감의 장소’라 부른다. 그의 칵테일은 단순히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억, 그리고 한국의 미감을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바 참(Bar Cham)’의 대표 칵테일인 ‘군산’, ‘굿바이’, ‘우롱탄’, ‘송편’, ‘충주 김밥’

이름처럼 ‘참’은 진솔함과 묵직함을 품은 곳이다. 임병진 오너 바텐더는 한국 바 문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그저 ‘음료를 만드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그간 그가 수많은 상과 찬사를 받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철학은 화려함이 아니라 ‘공감’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부터 ‘공감’의 키워드를 끌어내 고객과 끊임없이 교감하는 임병진 오너 바텐더   

“음료인이 음료에 깊게 접근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소비자가 그것을 어떻게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찾은 답이 바로 ‘공감’이었습니다.” 

그가 만드는 칵테일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참기름, 막걸리, 복분자, 무화과잎 등. 한국인의 미각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향과 맛들이 칵테일의 재료로 재디자인된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알아온 맛의 구조, 그게 곧 우리 일상의 클래식이에요.”

칵테일은 경험이다

‘Bar Cham(바 참)’의 음료는 단순히 ‘맛있는 칵테일’이 아니다. 한 잔의 술이자 하나의 경험이다. 그는 말한다. “칵테일은 직관적인 풍미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와인이나 사케보다 온도는 낮고, 당은 조금 높죠. 하지만 이 미세한 밸런스를 조정해 미식의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에게 페어링이란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서로가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의 행위’인 것이다.

‘배려’를 페어링의 기본 철학으로 삼는 임병진 오너 바텐더는 진정한 ‘마리아주’의 가치를 구현해낸다. 

그는 요리와 음료의 관계를 ‘대화’로 본다. “셰프의 플레이트는 이미 완벽한 구조를 지녔어요. 우리가 이 디시 위에 얹을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숨결 정도의 배려죠.” 그의 말처럼, 칵테일은 미식의 언어를 번역하는 또 하나의 화법이 된다.

‘센돌’, 한 잔에 담은 전라도 풍경 그리고 감성 깊은 칵테일들

그의 시그니처 칵테일 중 하나인 ‘센돌’은 ‘Bar Cham(바 참)’의 6번째 챕터에 수록된 작품이다. 전라도의 복분자, 무화과잎, 녹차, 그리고 소주 ‘화동원’의 쌀 향이 얽혀 만들어낸 구조는 섬세한 오케스트라 같다. 흥미롭게도 예로부터 전라도 출신 바둑기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 아이디어로 ‘센돌’이 탄생했다.

 “복분자의 깊은 베리감, 무화과잎의 나무향, 녹차의 감칠맛이 소주의 풍미를 섬세하고 풍성하게 감싸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잔 위에는 흰돌과 검은돌을 형상화한 복분자 젤리와 화이트 초콜릿이 얹힌다. 그의 말처럼, 영화 <승부>를 본 뒤였다면 이 칵테일의 이름은 ‘석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충주 김밥’은 김밥에 들어가는 오이와 참기름의 직관적인 향에 깍쟁이처럼 깔끔한 토끼 소주를 더했다. 또한 막걸리 와사비 시럽을 더해 코어까지 완벽히 잡았다. 

이 한 잔은 단순한 조합을 넘어선 미각의 서사다. 재료 하나하나가 그 지역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그는 이것을 조합해 감각적으로 ‘한국적인 풍경’을 재현해낸다. 즉 칵테일이 예술이라면, 그의 작품은 기억으로 빚은 풍경화다.

‘굿바이 새드니스(Goodbye Sadness)’는 피넛버터의 두툼한 고소함과 브라운 슈가의 달콤함, 패션 푸르츠와 라임의 상쾌한 시트러스함이 차례로 펼쳐져 놀라운 버라이어티함을 선사한다. 

다음으로 평소에도 인상 깊었던 드링크는 동명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굿바이 새드니스(Goodbye Sadness)’다. 실제로 이 곡을 들어보면, 영롱하고 맑은 멜로디와는 달리 서글픈 가사가 의미 있게 대비된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이 아련한 느낌을 풍기는데, 이 모든 요소가 칵테일에도 그대로 스며 있다. 

특히 고소하고도 달콤한 피넛버터 베이스 위로 패션 푸르츠와 라임이 가진 시트러스함이 밸런스 좋게 돋보이는데, 꽤 중독성이 있어 ‘바 참(Bar Cham)’의 시그니처로 느껴질 정도다. 

전통주 ‘풍정사계 동과 왕율주’와 레몬, 생강, 시나몬, 우유, 쑥의 깔끔한 하모니가 느껴지는 칵테일, ‘송편’. ‘레종데트르(Raison d'être)’의 깨와 참기름을 넣은 송편 모양 화이트 초콜릿으로 위트마저 더했다. 

한국적인 색채와 절기를 청아하게 구현한 칵테일도 있다. 이제 추석 즈음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송편’이 그것으로, 2022년에 첫 선을 보인 메뉴다. 전통주 ‘풍정사계 동과 왕율주’를 베이스로 레몬, 생강, 시나몬, 우유와 쑥의 풍미를 다채롭게 음미할 수 있다. 참기름을 바른 고소한 쑥떡의 맛과 참기름 특유의 진한 고소함 그리고 은은한 솔향까지 송편 풍미의 레이어를 모두 지니고 있어 머금을수록 정겹다. 

또 한 가지 특별한 건, 디저트 숍 ‘레종데트르(Raison d'être)’와 함께 만든 송편 모양의 화이트 초콜릿. 잔 바닥에 배치되어 있는데, 애프터 테이스트에도 포인트를 둔 세밀한 설계가 돋보인다. 실제 초콜릿에도 깨와 참기름을 더해 맛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존재감 있는 제주 감귤주와 우롱티가 묵직한 바디감을 구현하는 ‘우롱탄(Oolongttan)’. 버무스(베르무트)의 세련됨과 바나나의 향미가 덧입혀져 풍성한 마력을 만든다. 

한국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

“한국적으로 보이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이기에 낼 수 있는 맛, 이해할 수 있는 향을 탐구할 뿐입니다.” 

‘Bar Cham(바 참)’의 한국적인 캐릭터는 표면적인 장식이 아니라 감각의 DNA에서 비롯된다. 발효, 제철, 향 등 이 모든 것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지며, 미각·시각·후각의 균형 속에 잔잔한 즐거움을 준다.

전통주인 ‘선비진’에 비노 쉐리 향미를 입힌 칵테일, ‘군산’. 복분자와 무화과잎이 이뤄내는 감각적인 탄산이 매혹적이다. 

그는 한국의 재료를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진심이에요. 재료를 얼마나 이해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편하게 풀어내느냐의 문제죠.” 

이 ‘편안함’은 그저 서비스로서의 친절함이 아니다. 이것은 고객이 그의 잔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교류와 성장의 시간

“게스트 바텐딩이 유행처럼 번졌을 때도 있었는데, 결국 그 덕에 우리 문화의 수준도 분명히 올라갔습니다.” 그는 이러한 교류를 통해 기술과 철학이 함께 진화했다고 말한다. 

국내 및 해외 바텐더와의 교류뿐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소통을 추구하는 임병진 오너 바텐더  

그는 싱가포르 사이드 도어(Side Door)의 바니(Bannie Kang), 트라이선(Tryson Quek) 부부를 언급하며 “겸손한 자세 뒤에 최고의 섬세함을 펼쳐내는 바텐더와 셰프”라 평가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에게,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는 일’로 향한다.

“결국 사람입니다. 누구와 함께 일하고, 무엇을 함께 나누느냐가 모든 걸 결정하죠.” 그의 철학 속에서 교류는 경쟁이 아니라 공감의 확장이다. 그가 만들어가는 네트워크는 단순한 업계의 연대가 아니라, 미식 세계의 새로운 대화의 장인 것이다.

글로벌 무대 위 한국 바

“한국은 일본 문화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왔지만, 이러한 문턱이 오히려 바 업계에선 드링크의 디테일과 바텐더의 태도를 높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참나무 향이 스미는 한옥 풍경 안에 우드로 이뤄진 테이블과 인테리어, 잔 등에서 절제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바 참(Bar Cham)’

최근 5년 사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 바텐더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바니, 데미, 우노. 모두 ‘아시아 50 베스트 바(Asia’s 50 Best Bars)’와 ‘월드 50 베스트 바(World’s 50 Best Bars)’에 이름을 올렸죠. 이들이 보여준 수준이 앞으로의 세대와 미래를 비출 겁니다.” 

‘우롱탄(Oolongttan)’ 칵테일을 만드는 손길이 다도를 따르는 수행자처럼 섬세하고 절도 있어 보인다. 

그는 여전히 “동네의 작은 바를 지켜온 사람”이라 자신을 낮춘다. 그러나 이 ‘작은 바’가 지금 한국 바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pilogue _ 한 잔의 마음, 한 잔의 공감

임병진 오너 바텐더는 다음 움직임을 묻는 질문에 “해외에 있는 한식 셰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함께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바는 서울의 한 모퉁이에 있지만, 시선은 언제나 넓고 따뜻하다. 그의 술은 미각의 언어이자,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하나의 공감이다. 이것이 ‘Bar Cham’이 여전히 ‘참’으로 불리는 이유다.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바 참(Bar Cham)’의 비결은 언제나 넓고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제, 한국의 파인 다이닝 셰프들과의 새로운 협업을 꿈꾼다. “한 잔의 술이 요리와 같은 언어로 대화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셰프들이 만들어내는 맛의 세계와 바텐더가 다루는 향의 세계가 서로 만나면, 그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미식이 될 겁니다.”

그의 비전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다. 음식과 음료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감각으로 미식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그의 잔이 앞으로 어떤 셰프의 플레이트와 만날지, 또 이 만남이 한국 미식의 다음 장을 어떻게 써 내려갈지 기대를 부른다.

한국 파인 다이닝 셰프들과 감각과 감성, 마음으로 호흡하며 폭 넓은 협업을 꿈꾸는 임병진 오너 바텐더

“우리는 모두 미각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이 언어가 통하는 순간, 진짜 공감이 시작되죠.” 

그의 이 한마디처럼, ‘Bar Cham(바 참)’의 불빛은 이제 셰프들의 키친까지 닿아, 한국 미식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단락

Writer 김혜준(Hyejoon Kim)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Photographer 오충근(Choong-keun Oh)_ studio. choo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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