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천 셰프는 사찰 음식을 통해 배운 ‘비움’의 철학을, ‘비움’ 레스토랑과 더 나아가 삶의 수행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풍경을 잠시 떠난 듯한 고요함이 있는 곳, '비움(BIUM)'. 건축가 김대균과 협업하여 전통 한옥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이 공간은 감정이 가라앉고 마음이 정리되는 체험의 무대로 순식간에 서울의 미식 씬에 고요한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나무와 흙, 돌처럼 자연에서 온 소재들이 주를 이루며,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에 여백이 존재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숨겨진 디테일이 보이고, 화장실의 문고리마저 디자인의 연장선 위에 있다. 공간이 손님에게 과하게 말을 걸지 않도록, 조용히 받아들이고 안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설계했다. 그 침묵이야말로, 비움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깊이다.
이곳은 미쉐린 1스타 세븐스도어의 김대천 셰프가 사찰 음식에 깊은 영감을 받아 2024년 12월에 오픈한 채소 중심의 한식 레스토랑이다. 오신채와 동물성 재료를 배제하며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깊은 맛을 선보인다. 사찰 음식의 정신에 깊이 매료된 김대천 셰프는 진관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3년간의 준비 끝에 '비움'을 완성해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관사에서의 울림, 여정의 시작
김대천 셰프의 사찰 음식 여정은 백양사 천진암에서 시작됐다. 불교 신자가 아님에도, 그는 궁금증 하나로 그곳을 찾았다. “한국의 사찰 음식을 떠올리면, 많은 분들께서 가장 먼저 ‘정관 스님’을 떠올리실 겁니다. 저 역시 셰프로서의 궁금함,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음식 중 사찰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백양사 천진암을 찾아 스님의 음식을 직접 경험했는데, 정말 새롭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전국 사찰을 찾아다니며 익힌 장과 음식 그리고 요리 이상의 철학과 가치관
하지만 한국의 사찰 음식은 백양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다양한 사찰마다 고유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김대천 셰프도 이후 여러 사찰을 직접 찾아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경험했다.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저 또한 불자는 아니지만, 종교와는 별개로 음식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은 늘 가지고 있었어요. 이렇게 사찰 음식에 대한 탐색을 이어가던 중, 서울 진관사에서 사찰 음식을 접하게 되었고, 또 한 번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그 음식은 저에게 단순한 한 끼의 식사를 넘어서는 감동이었고, 음식이라는 세계가 한층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죠.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네요.”
진관사에 첫발을 들인 이후, 사찰 음식은 김대천 셰프에게 단순한 채식이나 전통 음식의 한 종류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었다. 셰프로서 다양한 한국 음식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찰 음식’이란 말에 내재된 철학과 조리 원리에 호기심을 느꼈고, 진지하고도 겸허하게 요리를 배우도록 스스로를 재촉했다.
진관사를 처음 방문한 날을 그는 또렷이 기억한다. 한 지인의 초대로 찾았던 서울의 작은 사찰에서 그는 “요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은 듯한 감동을 받았다.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음식은 ‘띄움 콩과 가죽나물 부각’이었다. 꾸밈도 없고 수식도 없는, 그저 담백하고 정직한 한 접시. 하지만 그 안엔 자연과 시간, 정성이 응축돼 있었다. 그 한 끼가 그의 요리 세계를 뒤흔들었다. 진관사에서의 그 경험 이후, 김 셰프는 매달 한 번씩 사찰을 찾았다. 시주도 자주 했고, 떡을 만드는 행사에는 찹쌀을 공양하며 함께 손을 보탰다. 그는 “마치 요리를 처음 배울 때처럼”이라는 말로 그 시절을 회상했다.
자연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시간과 정성이 깃든 ‘비움’의 한 상차림
사찰에서 배운 것은 ‘비움’
정식 교육 시스템도, 커리큘럼도 없는 그 공간에서 그는 오직 ‘몸’으로 배웠다. 스님의 곁에 서서 도우며, 어깨 너머로 기술이 아니라 자세를 익혔다. 그게 바로 ‘수행’이었다. 그렇게 3년. 진관사의 회주, 계호 스님은 그에게 ‘유발상자’라는 이름을 주었다. 머리를 깎지 않은 제자. 이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였다. 스님의 부엌에서 음식을 나누고 다듬으며, 그는 인내와 헌신을 배웠다. “스님은 요리법을 1, 2, 3 순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스님 옆에서 돕고, 조용히 지켜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한 시간이 쌓이며 그는 음식보다 먼저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
그는 이 시기의 가장 큰 배움을 ‘비움’이라 표현했다. 재료의 겉모습이나 레시피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요리의 핵심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찰 음식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이해해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레스토랑 ‘비움’의 시작점이다. 그는 음식이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며, 한 인간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진관사에서 체험했다. “‘비움’은 제 마음이 이끄는 공간이었어요. 솔직히 돈 벌려면 이걸 안 했을 거예요. (웃음) 그런데…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다 제가 자초한 일이죠. 기존 레스토랑과는 너무나 다른 방향이었기에 주변 동료들의 우려도 참 많았지만 안 하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어린 시절, 목사였던 아버지는 새벽 2시에 기도를 시작하곤 했다. 김 셰프는 유년 시절에 그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 장독대를 닦는 새벽의 고요 속에서 그는 그 시간의 정수를 체득한다. “노동이 아니라 기도”라는 말처럼, 그에게 있어 장을 담그고 재료를 손질하는 시간은 수행이며 명상이다. 그러니 ‘비움’이라는 이름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김 셰프가 새롭게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다. 진관사에서 시작된 그 울림은,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 고요하고 단단한 식탁으로 피어난다. 그 식탁에는 절제와 존중,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물음이 담겨 있다.
정리되지 않은 레시피 뒤에는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있다
김 셰프가 3년간 진관사를 오가며 떠올린 질문은 ‘사찰 음식의 조리법’이 아니라, ‘요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었다. “사찰 음식은 레시피로 정리되지 않아요. 스님마다 다르고, 절마다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사찰 음식의 핵심이라고 느꼈고, 그 태도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비움’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비운다’는 걸 결핍이나 부재로 오해하지만, 그에겐 비움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상태였다. 버리고 덜어냈을 때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비움’의 개념을 재료에도, 공간에도, 서비스에도 동일하게 투영하고자 했다. 마늘, 파, 부추 같은 오신채를 쓰지 않지만, 그것이 음식에서 향과 힘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제한된 재료를 통해 음식의 깊이를 탐구하는 것이 ‘비움’의 방식이다. 발효와 식감, 온도, 시간의 레이어들이 오신채 없이도 풍성한 맛을 만들어낸다.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 등 절제의 미학으로 음식의 깊이를 높이는 ‘비움’의 조리 방식
그에게는 음식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장을 다루는 손끝, 나물을 다듬는 자세,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하는 뚝심이 음식의 본질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비움’이라는 이름은 욕망을 지우고 순리에 따르겠다는 다짐을 담아낸 태도에 관한 선언이다. 더하지 않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중심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그의 요리관이다. ‘비움’이라는 말 안에는 있다. 그 다짐은 메뉴 구성뿐 아니라, 공간 구성, 손님 응대, 심지어 예약 시스템에도 반영된다. 그는 말한다. “요리는 나에게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그 삶의 방향은,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되더라고요.”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짧은 순간이라도 복잡한 생각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밥을 먹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세심하고 설명이 많은 기존 파인 다이닝의 문법과는 조금 다른, 비움만의 서비스 철학을 제안한다. “음식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면 ‘최대한 짧게’ 드리려고 합니다. 이건 마음을 전하는 일이지,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는 것이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음료 역시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필요하시거나 문의해 주셨을 때에만, 정중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김대천 셰프는 너무 많은 자극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고 말한다. 비움은 음식점이라는 존재 의미에 걸맞게, 그저 음식이 말하게 두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자랑하고 싶을 만큼 귀한 재료를 정성 들여 공수해 와서 열심히 요리하지만 그것을 먼저 드러내기보다는, 고객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감각으로 조용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레스토랑 주방의 연장, 장독대
비움은 사찰 음식을 모방하기보다는 매일 정성을 담아 수행하는 마음을 계승한다. 그 철학의 출발점이자 가장 눈에 보이는 상징이 바로 장독이다. 매일 아침, 김대천 셰프는 장독대를 열고 닫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서울 청담동의 작은 중정에는 실제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장독들이 놓여 있다. 그는 말한다. “장독은 그저 발효를 위한 도구가 아니에요. 매일 돌보는 그 행위 자체가 요리의 출발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장은 공기 좋은 산속에서나 잘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정성만 있다면 도심에서도 훌륭한 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장을 만든다는 건 단순한 제조가 아니라, 시간을 빌려 쓰는 일이다. 날씨, 습도, 소금의 간수 상태까지 매일 체크하며 장을 관리하는 그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기도와도 같다. 그는 아버지의 새벽 기도를 떠올리며, “이건 인간의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에요. 신념과 철학이 없으면 못해요”라고 덧붙인다. 실제로 비움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몇 년간 간수를 뺀 뒤 사용하고, 장은 매년 새로 담가 시간을 겹겹이 쌓아 숙성시킨다.
“좋은 장을 만드는 요소는 멋진 자연 환경이나 농원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부지런함’입니다. 매일 장독대를 닦고, 장을 확인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살피고, 숙성 상태를 체크하며, 곰팡이가 생기면 그것을 걷어내거나 관리하는 모든 과정이 좋은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장 명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요리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장은 비움의 음식에서 단지 양념이 아닌, 요리 철학의 뼈대가 된다.
장을 담그고 재료를 손질하며 ‘비움’의 철학을 수행하는 김대천 셰프
채소로 만드는 밥집
비움은 파인 다이닝이나 비건 레스토랑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 비움에서 내는 음식은 채소 위주의 소박한 한 상이다. 메뉴판은 따로 없고, 매일 달라지는 제철 재료에 따라 구성된다. 밥과 국, 반찬, 그리고 조금의 특선. 전부 채소와 곡물, 발효된 식재료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식당을 “그저 채소로 밥 짓는 집”이라 말한다. 파인 다이닝도 아니고, 비건도 아니고, 사찰 음식점도 아니다.
김대천 셰프가 떠올린 질문은 하나다. “1000년 전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마늘이나 기름, 고기 등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대. 그 시대의 상상 속 음식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절제된 모습일 것이다. 지금 한식에서 과도하게 활용되는 마늘 등의 향신 채소와 강한 맛은 근대화 이후의 산물이다. 가난했던 농경 사회의 한국에서, 향신료를 많이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금도 귀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소박한 요리들이 많이 떠올랐고, 이런 요리를 만들다 보니 오히려 더욱 원재료의 맛과 향에 집중하게 되는 결론에 이르렀다. 절제하는 것, 1000년 전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음식, 그리고 오신채를 쓰지 않고 음식 또한 수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찰 음식의 정신이 어우러졌다. 이런 사유가 오신채를 배제하고,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게 만든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비움에서 내는 음식을 먹고 몸이 변했다. 밤잠이 깊어지고, 살이 빠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억지로 절제한 것도,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음식을 바꾸었을 뿐이다. “음식이 몸을 바꾸면, 마음도 따라와요.” 그가 말하는 요리의 진심이다. 이 채소 밥상이 가장 먼저 닿았던 사람은 바로 그의 가족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세븐스도어나 다른 레스토랑에 가족을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비움을 열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들, 장인어른까지 초대했다. 함께 비움의 요리를 경험하며, 그는 요리가 ‘공간’이자 ‘기억’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비움이 곧 채움으로 승화되는 김대천 셰프의 정갈한 디시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해주신 요리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께 세븐스도어를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스스로도 어쩐지 쉽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비움’을 열고 나서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함께 꼭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장인어른까지 온 가족을 불러 같이 식사했죠. 저도 오랜만에 자리에 앉아, 손님으로서 비움의 음식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아주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김대천 셰프에게 비움의 음식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나누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식사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의 일상을 정성스럽게 채워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밥 한 끼. 절제 속에서 오는 풍요를 믿는 그는,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오래 씹을수록 고요한 맛이 배어나는 요리를 지향한다. 쑥의 향, 들기름 한방울, 고사리의 질감, 집 간장의 여운. 그것들이 곧 비움의 요리다. 그의 한 상은 미각의 충족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조율을 함께 꾀한다.
육류 없이도 충분한 식탁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고기 없는 식사’는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셰프는 그 허전함의 틈새야말로 진짜 식재료의 맛, 자연의 흐름을 전달할 수 있는 여백이라고 말한다. 제한된 식재료 속에서 오히려 창의력은 더욱 살아나고, 하나의 재료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계절과 땅이 가진 이야기를 요리로 풀어낸다. 고기 없이도 식사의 풍요로움을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은, 그가 비움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 나가는 요리 세계의 출발점이다.
사찰 음식의 철학을 몸소 익히며 식물성 식재료에 최적화된 감칠맛과 온도, 식감을 정교하게 다듬어온 김대천 셰프
“절제와 창조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김 셰프는 무언가를 덜어내면서도 감동을 주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실험과 실패를 감내해야 했고, 그렇게 식물성 식재료에 최적화된 감칠맛, 온도, 식감의 배치를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발효와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깊은 맛을 만드는 데 동물성 재료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체득해갔다. 동시에, 사찰 음식의 철학을 통해 그는 채식이 억지로 참고 견디는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버섯의 충족감 있는 식감, 고사리 특유의 풍미, 불향 가득한 만두 한입이 전하는 따스한 위로는 더 이상 ‘고기 없는 대안’이 아닌, 그 자체로 완결된 요리의 언어였다. 식물성 재료의 세계는 결코 단조롭지 않았고, 오히려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었다. 그에게 비건 다이닝은 유행을 넘어서 삶의 태도로, 건강과 환경, 그리고 마음의 균형을 고려하는 감각이 요리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순환의 고리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에게, 레스토랑 ‘비움’은 작은 도시락을 건넨다. 소담스럽게 밥과 나물이 가득 담긴 도시락에 셰프는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따뜻한 위로를 담았다. 이 아이디어는 셰프가 진관사에 다니던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비움이 전하는 마지막 작은 정성, 나물과 밥이 담긴 도시락
“절을 나설 때, 스님이 나물을 싸 주시곤 했어요. 다음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그 한 접시의 포근함이 하루를 시작하는 든든한 행복이 되었죠. 마치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마음처럼요.”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신 반찬처럼, 이 도시락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정(情)’의 상징이기도 하다. 단순한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담기 위해, 그는 도시락통부터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중, 100년 전 제작된 한국의 나무 도시락통을 구했고, 그 형태를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공방을 찾기 시작했다.
여정은 뜻밖에도 일본 교토에서 이어졌다. 3대째 목공예를 이어오고 있는 한 장인을 만나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 도시락통을 직접 보여주었다. 장인은 그것을 받은 순간, 감사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과거의 공예품을 손에 쥔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1000개의 나무 도시락통이 ‘비움’의 오픈에 맞춰 제작되었고, 초창기 손님들에게 하나씩 선물되었다.
도시락통은 다시 가져오면 나물과 밥을 담아주는 ‘텀블러’ 같은 개념으로 활용된다. 지금은 목공예 도시락통이 모두 소진되었지만, 여전히 비움은 아름다운 종이 도시락에 정갈한 한 끼를 담아 손님에게 전한다. 파인 다이닝의 기프트 같은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냉장고 속 한켠에서 또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는 마음의 음식이 된다. ‘먹는 순간’을 넘어 ‘남겨지는 따스함’을 지향하는 레스토랑의 철학이, 이 작은 도시락으로 이어진다. 화려한 것 없이 비워낸 식탁 위로 가득 채워지는 마음, 김대천 셰프가 새롭게 선택한 삶의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