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의 즐거움이 곧 레스토랑의 즐거움이 된다고 말하는 모리의 김완규 셰프. 부산의 풍경과 계절은, 모리의 식탁에서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
같은 계절에 잡힌 생선이라도 산지와 크기, 지방이 오른 정도에 따라 가장 맛있는 시기가 달라진다. 김완규 셰프가 매일 아침 부산의 수산시장을 직접 찾는 것도 그 미묘한 차이를 살피기 위해서다. 미리 구상한 메뉴가 있더라도 시장에서 만난 재료에 따라 그날의 요리가 달라지기도 한다. 김완규 셰프에게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가지 구분보다 훨씬 세밀하다.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가이세키 레스토랑 모리(Mori)는 김완규 셰프와 일본인 아내 모리상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아내의 성에서 따왔다. 김완규 셰프가 요리를 맡고, 모리상은 손님을 맞이하며 서비스를 책임진다. 두 사람은 일본 가이세키의 형식을 바탕으로 부산의 식재료와 계절의 맛을 한 코스에 담아낸다.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가이세키 레스토랑 모리
일본 요리의 맛을 익히다
김완규 셰프는 경남 창원에서 자랐다. 횟집을 운영한 어머니 덕분에 집안의 밥상에도 곧잘 제철 생선과 해산물이 올랐고,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가까이하며 성장했다. 어느 일식당의 카운터에서 식사한 경험은 그가 일식 요리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눈앞에서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와 그 음식을 즐기는 손님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특별한 순간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창원의 일식당에서 요리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건 전역 후, 스물두 살이었다. 경력을 쌓아가던 중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여태 자신이 배우고 익혀 온 일식의 맛은 과연 일본 현지의 맛과 얼마나 같을까. 그 답을 확인하고 싶었던 그는 스물아홉에 일본으로 향했다. 당초 계획은 여러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현지의 맛을 경험하고, 주방에서도 일해본 뒤 1년쯤 후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과 달리 전개됐다. 평소 존경하던 오쿠다 도루(Toru Okuda) 셰프가 교육 고문으로 참여하는 도쿄 스시·와쇼쿠 조리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입학을 결심했다.
일본에서 만난 스승 가운데 특히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학교의 하세가와 데쓰야 선생과 오쿠다 도루 셰프였다. 하세가와에게서는 일본 요리의 맛을 판단하는 기준을 배웠다. 한국에서 익혀 온 맛이 일본 현지에서도 통하는지, 본래 어떤 맛을 내야 하는 음식인지, 왜 그런 방식으로 조리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배웠다. 한편 오쿠다에게서는 일본 요리의 전통적인 기법 뿐만 아니라,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도 더 나은 맛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태도를 배웠다.
어느 날, 오쿠다가 펴낸 요리책을 살펴보던 김완규 셰프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책에 대표 요리로 소개할 만큼 완성도를 인정했던 음식을 왜 이듬해에는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일까. 오쿠다의 답은 명료했다. 이전보다 더 맛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매년 같은 요리만을 선보일 수는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더 나은 맛을 향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오쿠다는 지금도 김완규 셰프가 레스토랑 운영에 관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조언을 구하는 스승이다.
지금도 레스토랑 운영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스승 오쿠다 도루 셰프와 김완규 셰프
김완규 셰프는 도쿄 이케지리오하시의 일본요리점 슌사이 오구라야(旬菜 おぐら家)와 오쿠다가 이끄는 긴자 고주(銀座小十)에서 각각 1년 6개월씩 경력을 쌓았다. 오구라야에서는 제철 채소와 생선을 중심으로 한 일본 요리를 경험했고, 긴자 고주에서는 오쿠다의 요리를 가까이에서 익혔다. 2003년 문을 연 긴자 고주는 미쉐린 가이드 도쿄에서 7년 연속 3스타를 받은 곳으로, 오쿠다는 이곳을 기반으로 일본 요리를 해외에 알리는 활동도 이어왔다.
일본에서 약 7년을 보낸 그는 아내 모리상과 결혼한 뒤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1년 1월 해운대에 자신의 레스토랑 모리를 열었다. 모리는 미쉐린 가이드가 부산을 처음 평가한 2024년에 1스타를 획득했으며, 현재도 그 별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시장에서 결정하는 메뉴
김완규 셰프의 하루는 시장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자갈치시장과 민락항 등 부산의 수산시장을 돌며 식재료를 살핀다. “저는 요리의 시작은 재료를 손질하는 순간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해요.” 생선은 어획 후 어떻게 다뤄졌는지에 따라서도 맛과 품질이 달라진다. 특히 숙성을 거치는 살아 있을 때의 상태부터 그 후 처리 과정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거래처에 작은 수족관을 마련해 생선을 살아 있는 상태로 보관하기도 한다.
재료를 고르는 기준도 엄격하다. 손님상에 올릴 보리새우 여덟 마리를 고르기 위해 300마리를 일일이 살펴볼 때도 있다.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하다 보니 저녁에 정산서를 받아 들고 예상보다 많은 금액에 놀라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원하는 재료를 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상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예정된 메뉴에서 과감히 제외하고, 뜻밖에 좋은 재료를 발견하면 레스토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기도 한다.
매일 아침 부산의 수산시장을 돌며 재료를 고르는 김완규 셰프
모리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약 70%는 부산에서 구한다. 삼치와 고등어, 금태 같은 생선부터 미역과 다시마에 이르기까지 부산 인근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이 코스에 오른다. 그렇다고 산지를 부산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같은 어종이라도 시기에 따라 맛이 좋은 산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산보다 다른 지역에서 잡힌 생선이 더 맛있는 시기라면 그곳에서 들여온다. 산지에 얽매이기보다 그때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완규 셰프가 지향하는 요리는 ‘계절의 표현’이다. 그에게 제철이란 단순히 특정 식재료가 나는 시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제철 재료라도 맛과 향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봄나물처럼 수확 시기가 짧은 재료도 가장 맛있는 때에만 사용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굳이 저장해두고 같은 요리를 이어가지 않는다. 계절의 맛을 가장 좋은 순간에 온전히 선보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2026년 1월 현재의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여덟 석의 카운터에 4인용 별실을 추가했다. 좌석은 네 개 늘었지만 준비해야 할 식재료와 운영에 필요한 일은 그만큼 많아졌다. 그럼에도 김완규 셰프는 매일 아침 시장을 찾아 재료를 고르는 일만큼은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2026년 1월 해운대의 새 공간으로 이전한 모리
계절을 담고, 맛을 다듬다
모리의 코스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작은 요리들을 한데 담아낸 핫슨(八寸)으로 시작한다. 가이세키에서 계절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구성이다. 김완규 셰프는 손님이 핫슨을 마주하는 순간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눈으로 먼저 즐기고, 작은 요리들을 하나씩 맛보며 이어질 코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 역시 핫슨의 역할이다. “좋은 생선은 잘 굽기만 하면 돼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작은 요리들을 한데 담아 코스의 시작을 여는 핫슨
모리의 갈치구이는 이 간결한 말에 담긴 조리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갈치 살을 도톰하게 말아 비장탄의 강한 화력으로 표면을 빠르게 굽고, 남은 열로 속까지 익힌다. 굽는 동안 사케와 미림 등을 더한 간장 양념을 여러 차례 덧발라 풍미를 입힌다. 이렇게 완성한 갈치는 겉면의 구운 향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은행과 갈아낸 무, 부산에서 ‘앙장구’라고 부르는 말똥성게를 곁들인다. 기장에서 나는 앙장구 역시 맛이 좋은 시기를 가려 사용하는데, 특히 10월과 11월에 나는 것을 선호한다.
비장탄에 구운 갈치에 은행과 간 무, 기장 앙장구를 곁들인 모리의 갈치구이
가을의 또 다른 요리는 송이버섯과 소고기를 곁들인 샤부샤부다. 송이버섯과 소고기 채끝, 파를 가쓰오부시로 우려낸 다시에 익혀 먹는다. 소고기는 지나치게 기름지지 않으면서 육향과 지방의 풍미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채끝을 선택한다. 파와 송이버섯이 익으면서 국물에 향이 스며들고, 간장으로 가볍게 간한 다시가 재료의 맛을 받쳐준다. 김완규 셰프는 국물의 성격에 따라 가쓰오부시도 달리 선택한다. 맑은 국물인 스이모노에는 진한 감칠맛보다 깨끗한 향을 중시해 잡향을 낼 수 있는 부분을 제거한 가쓰오부시를 사용한다. 반면 여러 재료와 함께 조리하는 국물에는 풍미가 진한 것을 선택한다.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이 더해져도 다시의 풍미가 충분히 느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날 필요한 만큼 매일 새로 우려낸다. 간장 역시 용도에 따라 모두 따로 준비한다. 같은 조미료라도 쓰임에 따라 필요한 맛과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송이버섯과 소고기 채끝, 파를 가쓰오부시 다시에 익혀 먹는 가을의 샤부샤부
좋은 식사를 완성하는 환대
모리의 서비스는 김완규 셰프의 아내 모리상이 책임진다. 김완규 셰프가 아내의 서비스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안정감’이다. 손님이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채고, 바쁜 순간에도 분주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다. 모리상 역시 손님이 식사하는 내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 바탕에는 일본의 환대 정신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가 있다. 손님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헤아리고,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외국인 손님이 낯선 식재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식재료 사진을 담은 영문 메뉴판을 별도로 마련한 것도 그 일환이다.
“손님이 즐겁지 않으면 저도 즐겁지 않거든요.” 모리상은 처음에는 표정이 밝지 않았던 손님이라도 식사하는 동안 세심하게 살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다 보면, 돌아갈 때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순간이 서비스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다.
오모테나시의 마음으로 모리의 서비스를 책임지는 모리
오래 기억되는 한 끼를 위하여
앞으로 모리가 어떤 식당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묻자 김완규 셰프는 어린 시절의 식탁을 떠올렸다. 가족과 함께 먹었던 제철 음식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듯, 모리에서의 한 끼 역시 손님들에게 그런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취재 중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구워주던 금태의 맛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김완규 셰프는 바로 그런 경험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부산에서 자란 누군가가 어릴 적 먹었던 생선을 훗날 모리에서 다시 맛보고, 언젠가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래 기억되는 한 끼를 위해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김완규 셰프와 모리상
김완규 셰프가 일식 요리사를 꿈꾸게 된 곳은 어느 일식당의 카운터였다. 그곳에서 요리사가 손님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이제 자신의 레스토랑 모리의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어린 시절 마음에 남았던 그 풍경을 이제는 자신의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