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바텐더로 살아온 유종영 대표가 여전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란 무엇이며, 좋은 바텐더란 무엇인가?
“바탑(바 테이블)이 왜 무거운지 아세요? 힘듦이나 괴로움, 슬픔 같은 걸 다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하려고 그런 거예요.”
내자동 코블러 전경
좋은 일이 있었든, 힘든 하루를 보냈든 삶의 문장 사이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 그의 바에 대한 생각은 30년 전부터 이어진 질문에서 출발했다.
“바가 뭐라고 생각해?”
유종영 대표가 처음 바에 들어간 것은 1996년이다. 집안의 권유로 호텔경영을 전공한 뒤, 경주의 현대호텔에 있던 ‘하바나’에서 주니어 바텐더로 일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바텐더라는 직업의 즐거움을 느낀 그는 1999년, 서울에 올라와 있던 동료들의 권유로 TGI 프라이데이스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수는 1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가 뭐라고 생각해? 바텐더는 뭐라고 생각해?’ 매번 다른 답을 해야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만난 사수에게 그 질문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런 것에 답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 말에서 답을 찾았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연희동 코블러 전경
서비스에도, 음료에도 절대적인 100점이나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종영 대표는 바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표현한다. 바텐더라는 일 역시 그에게는 직업이면서 동시에 삶의 방식이다. 낮과 밤의 생활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행지에서 마시는 술이나 시장에서 처음 보는 과일과 향신료, 새로운 음식의 맛까지 일상의 모든 자극을 결국 바와 음료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여러 개인 업장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후, 2007년 홍대에 자신의 영어 이름을 딴 첫 바 ‘로빈스 스퀘어’를 열었다. 독립은 거창한 계획의 결과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서른을 넘긴 바텐더를 새로 고용하는 곳도 많지 않았다. 함께 일하던 후배가 어느 날 “바텐더 경험만 가지고 정말 바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답했지만, 정작 자신도 그 답을 증명해본 적은 없었다. 결국 보증금과 월세가 가장 저렴한 공간을 찾아 바를 열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6개월만 버티자.’
그렇게 시작한 로빈스 스퀘어는 홍대에서 13년 넘게 이어졌다. 오픈 1년이 지나던 어느 날 그는 길을 걷다 수많은 간판을 보며 문득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바텐더 11년 차가 아니라 오너 바텐더 1년 차였다는 걸요.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가 정말 위대해 보이더라고요.”
손님이 가르쳐준 칵테일
지금처럼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시절, 해외에서 돌아온 손님들이 생소한 술과 칵테일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느 날에는 ‘카이피리냐’가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도, 직접 마셔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맛인지 손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라임을 구해보고, 럼과 데킬라를 섞어 자신이 상상한 형태의 음료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훗날 브라질의 증류주 카샤사가 국내에 들어온 뒤에야 제대로 된 카이피리냐를 만들어볼 수 있었다.
“손님들이 선생님이었던 거죠.”
다양한 정보를 찾기 힘들던 시절 그에게는 손님들이 선생님이었다
궁금한 것을 모르는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자료가 없으면 직접 찾아보고, 없으면 만들어봤다.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고, 무엇인가 궁금해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쪽이었다. 서비스와 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고민하던 시기에는 대니 메이어의 『세팅 더 테이블』을 읽었다. 자신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일해야 하는지, 바텐더가 손님을 대할 때 어떤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의 폭을 좁혀준 책이었다.
이 집요한 호기심은 시간이 흐르며 코블러의 독특한 교육 방식으로 이어졌다
코블러의 독특한 바텐더 교육 방식
코블러의 바텐더가 된다는 것
경력 10년 즈음, 유종영 대표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칵테일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짓는데 1층을 짓다가 갑자기 8층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흩어진 지식을 다시 쌓기 위해 칵테일과 스피릿을 기초부터 공부하고, 팀원 교육을 위한 약 15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김아름 연희 코블러 대표와 자료를 정리하며 교육 방식도 체계화했다.
연희동 코블러 김아름 대표
코블러에 들어온 신입은 첫 일주일 동안 칵테일을 만들지 않는다. 집기의 위치와 사용법부터 익히고, 리큐르를 맛보며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한다. 셰이킹과 스터링을 하는 이유와 움직임까지 배운 뒤에야 칵테일로 넘어간다.
다이키리를 배운다면 럼과 라임, 설탕의 비율만 외우지 않는다. 각각의 재료와 역사를 공부하고 김렛이나 사이드카 같은 클래식으로 범위를 넓힌다. 위스키와 보드카, 미국 금주법 같은 주제는 선배들이 다시 공부해 후배에게 설명한다. 데이비드 원드리치의 『임바이브!』부터 데이브 아놀드의 『리퀴드 인텔리전스』까지 공부의 대상이다.
유종영 대표는 바텐더의 성장을 ‘뿌연 안개 속을 걷는 일’에 비유한다. 얼마나 왔는지 보이지 않지만 계속 걷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멀리 와 있음을 깨닫고,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일의 반복이다.
그가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기준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성실함일 때도, 지식과 테크닉일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지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바텐더는 결국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목적지가 되는 바
2016년 내자동에 코블러를 열 때 유종영이 선택한 곳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였다. 직접 공간에 머물며 지켜봐도 사람이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정통적인 바의 분위기를 갖추되 손님들이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곳, 술을 마시는 행위뿐 아니라 그곳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20년에는 코블러 연희를 열었다. 현재 연희점은 1층 37석, 2층 31석으로 총 68석 규모다. 1층과 2층에 각각 바와 홀, 별도의 룸을 두고 있으며 9명의 직원이 함께 운영한다. 유종영 대표가 이 공간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단어는 ‘여유와 낭만’이다. 술병으로 빼곡하게 채운 백바를 바라보는 것만이 바의 풍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달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겨울이면 눈이 쌓이는 모습처럼 바깥의 시간까지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랐다.
여유와 낭만의 연희동 코블러
‘Stay Gold’, 잊고 있던 황금빛 기억
코블러의 두 공간의 메뉴 역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풀어간다.
내자동에서는 ‘희나리’, ‘바림’, ‘나린’처럼 순우리말을 칵테일의 이름과 이야기로 가져왔다.
‘바림’은 한쪽의 짙은 색이 다른 쪽으로 갈수록 점차 옅어지는 것을 뜻한다. 바닐라빈과 카카오닙스, 커피를 사용한 차갑고 투명한 보드카 베이스의 음료에 따뜻한 화이트 초콜릿 폼과 통카빈의 향을 더해 서로 다른 온도와 색, 향과 맛을 한 잔에 담았다.
내자동 코블러의 순 우리말을 활용한 칵테일 '바림'(좌), ‘나린'(우)
‘나린’은 ‘내리다’에서 온 말로, 감정이 사르르 내려앉는 듯한 차분한 설렘을 뜻한다. 플랜테이션 파인애플 럼에 구운 망고와 복숭아, 코코넛, 히비스커스, 피노 셰리를 더하고 샴페인 딜 폼을 올려 트로피컬한 풍미와 부드럽고 산뜻한 여운을 표현했다
연희점에서 준비 중인 새로운 메뉴의 주제는 ‘Stay Gold’.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어느새 잊힌 아름다운 황금빛 기억을 칵테일로 풀어낸다.
‘Golden Hearth’는 해질녘 시골집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장작 연기와 가마솥 밥 냄새를 떠올린다. 화요 41에 쌀 코지 코디얼과 스모크 시럽을 더하고 누룽지를 곁들여 오래된 부엌과 어머니가 차려주던 음식의 온기를 담았다.
연희동 코블러의 'Stay Gold’ 주제의 옛 기억을 떠올리는 ‘Golden Hearth’(좌), ‘Ember Lite’(우)
‘Ember Lite’는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쥐불놀이에서 출발한다. 구운 감자 껍질의 향을 입힌 럼에 배와 유자 꿀, 마라스키노 리큐르, 이화주 폼을 더해 불과 연기가 지나간 들판의 풍경을 표현했다.
코블러의 시그니처 칵테일에서 유종영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낯선 재료나 기술보다 ‘왜 이 음료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다.
“5분 만에 만들어진 좋은 칵테일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시그니처라면 목적과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칵테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명확히 하고 그것을 맞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하나의 음료를 10시간 고민하는 것과 10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든다고 믿는 이유다.
다시, 바란 무엇인가?
한국의 바 씬에 대해 묻자 유종영 대표는 자신이 기다리는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새로운 바들이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 바 문화의 뿌리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바텐더의 첫 1~2년을 중요하게 본다. 자기 색이 드러나기까지는 10년 정도가 걸릴 수 있지만, 그 색을 결정짓는 기초와 마인드셋은 처음 몇 년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바텐더로 살아왔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목표는 여전히 완성이나 정답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정답이 없는 100점을 만들기 위해 계속 그 길을 가는 거죠.”
주니어 바텐더 시절 매일 마주했던 질문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의 바텐딩을 관통한다.
‘바란 무엇인가.’‘바텐더란 무엇인가.’
유종영 대표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되새긴다
한때 그는 소설을 읽다 문장 속 ‘쉼표’에서 자신의 답을 찾았다. 지치거나 괴로운 순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해주는 것. 바 역시 좋은 날이든 힘든 날이든 잠시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답은 여전히 없다. 대신 코블러의 무거운 바탑 위에 손님은 오늘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 앞에서 바텐더들은 조금 더 나은 한 잔을 만들기 위해 다시 공부하고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