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다시 발견한 한국의 맛, 하수오 이정준 셰프

도쿄 히로오의 한식 레스토랑 하수오를 이끄는 이정준 셰프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닮은 점과 작은 차이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 차이를 통해 한국의 맛을 다시 들여다본다.

도쿄 히로오의 한식 레스토랑 하수오(HASUO)를 이끄는 이정준 셰프에게 일본에서 한국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두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닮은 점과 작은 차이를 관찰하고, 그 차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맛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더하고 일본에서는 덜어낸다”는 그의 표현처럼, 한국에서 몸에 익힌 맛 위에 일본의 식재료 철학과 정교한 기술을 겹쳐놓으며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조율한다.

 

하수오의 이정준 셰프

프렌치 요리사를 꿈꾸던 소년, 한식으로 돌아가다

전주가 고향인 이정준 셰프는 한국의 대학에서 요리를 배웠다. 처음부터 한식 요리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요리를 지향하며 20대에는 서울의 프렌치와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돌아온 대학 동기가 오사카의 하지메(HAJIME)에서 경험한 요리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가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유럽에서 기술을 배운 일본 요리사들이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식재료와 문화, 사고방식을 접목해 자신들의 요리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언젠가 한국적인 현대 요리를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일본에서 그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찍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고등학생 때 일본어를 배웠던 그는 워킹홀리데이를 이용해 일본으로 향했다. 2014년 첫 연수지는 하지메였다. 약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달라졌다. 요네다 하지메 셰프를 중심으로 한 미팅에서는 우주와 기술, 철학과 예술, F1까지 다양한 주제가 음식과 연결됐다. 한 접시의 뒤에는 맛과 기술을 넘어 하나의 생각과 관점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리사와(NARISAWA)에서는 원하는 야생초를 직접 채집해 보내주는 생산자와 그 식재료의 배경까지 파고드는 요리사를 보며 좋은 재료를 ‘구하는 일’과 그것을 ‘다루는 일’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이후 Reminiscence에서의 연수와 TIRPSE, MAGICAMENTE 등에서의 경험 역시 다양한 요리의 접근법을 익히는 시간이 됐다.

그가 일본에 처음 온 2014년만 해도 한국에는 미쉐린 가이드가 없었고 지금처럼 ‘한식 다이닝’이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정준 셰프는 “당시에는 한식의 정통성을 깊이 고민하고 발전시키기보다 기존 한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더 좋은 변화라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발전은 오히려 반대 방향에 가깝다. 먼저 한식의 본질과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기준을 분명히 세운 뒤 그 틀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요리의 ‘히키잔(引き算)’, 즉 뺄셈의 미학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되, 그러기 위해서는 원물의 상태와 맛, 밸런스부터 각각의 조리 과정까지 더욱 완벽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여러 조미와 발효의 맛을 쌓아 깊이를 만드는 한국 음식과 재료를 선별하고 손질하고 불을 넣는 과정에서 맛을 선명하게 끌어내는 일본의 방식. 하수오의 음식은 이 두 관점을 이정준 셰프의 방식으로 연결한다.

 

도쿄의 한식 다이닝, 하수오

이정준 셰프의 하수오

하수오는 이정준 셰프가 처음부터 창업한 레스토랑은 아니다. 2018년 도쿄에 문을 열었고, 초기에는 유럽과 캐나다 등에서 경험을 쌓은 박수현 셰프가 창업자이자 총괄 셰프를 맡았다. 이정준 셰프는 2022년 4월 하수오를 인수해 오너 셰프가 됐다. 그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기존 하수오의 인상을 조금 더 완성도 높은 다이닝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일이었다.

변화는 거창한 곳에서만 시작되지 않았다. 물수건을 건네는 방식 같은 작은 서비스부터 다시 살폈고, 같은 요리를 만들더라도 한 번씩 손을 더 들여 익숙한 음식이 조금 더 맛있어질 방법을 찾았다. 코스 가격을 올리지 않은 채 식재료 원가도 높였다. 그렇게 음식과 서비스의 디테일을 하나씩 끌어올리며 하나의 가치를 추구해 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식당”을 꿈꾼다는 이정준 셰프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이 셰프는 하나의 식재료에도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특정 재료를 깊이 연구하는 생산자들이 전국에 있으며, 그 다양성과 함께 재료를 다루는 기술도 축적돼 있다는 점을 알았다. 변화가 빠른 한국 외식 시장과 달리 하나의 분야를 장인처럼 오랫동안 파고들 수 있는 환경 역시 그가 일본에서 자신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이유다.

가장 익숙한 한국 음식, 세계 무대에 서다

하지만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발견한 것은 새로운 기술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너무 익숙해 잊고 있던 한국 음식의 가치였다. “로컬푸드와 소울푸드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어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국밥이나 감자탕 같은 음식을 거의 10년 가까이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감자탕이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여기서 출발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 연구하며 직접 만든 감자탕은 레스토랑의 메뉴에 올랐고, 이 경험을 계기로 감자탕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의 소울푸드를 그 음식이 생겨난 문화적 배경과 함께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수오의 쌈과 갈비

그래서 지금의 하수오는 낯선 전통 음식을 극적으로 변형하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음식에서 그 본질을 다시 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다. “해외 생활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그런 음식들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추억이 그러하듯 맛 자체보다 그 음식이 왜 좋았는지, 그 안에 어떤 본질이 있는지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어릴 때 먹었던 기억과 향수, 당시의 감정을 되짚으며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익숙한 기억 속에서 그 음식이 가진 핵심을 찾아낸다.

전통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이정준 셰프의 기준도 흥미롭다. 스스로 물었을 때, ‘여전히 이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가 우선이다. 한때 해물 들깨 육수에 독일식 파스타인 슈페츨레를 곁들여 ‘들깨수제비’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수제비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한국인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독일 손님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형태를 바꾸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주한 뒤에도 그 음식의 정체성을 납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현재 자신의 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로 그는 간장게장과 반상, 그리고 과거 메뉴였던 소고기무국을 꼽는다. 소고기무국은 “같은 재료의 조합으로 일본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법한 가정요리가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아는 소고기무국의 맛은 유지하면서 일본의 조리법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완성했다. 한일 양국의 문화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상상한 요리다.

 

홋카이도 하코다테의 꽃게를 사용한 하수오의 간장게장

 

익숙한 한식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그중에서도 간장게장은 이정준 셰프의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수오에서는 홋카이도 하코다테나 구마모토 아마쿠사의 신선한 꽃게를 사용한다. 하지만 “간장에 게를 절인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게장과 레시피도 맛도 상당히 다르다. 게 자체의 감칠맛과 단맛,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절이는 시간을 수 시간으로 단축하고, 줄어든 숙성 시간에 맞춰 간장의 풍미와 염도를 다시 설계했다. 원물 선택부터 급속냉동과 보관, 해동, 손질, 비린내를 제거하는 과정까지 모든 요소를 세밀하게 조정한다. 하지만 반드시 지킨 간장게장의 본질도 있다. 손으로 게살을 먹은 뒤에는 등딱지에 남은 내장과 알을 밥과 섞어 한국 김에 싸 먹는다. 누구나 간장게장이라고 알아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 배운 ‘뺄셈’의 방법으로 원재료의 맛을 더욱 앞으로 끌어낸 것이다.

하수오의 간장게장

그에게 이 요리는 해외에서 한식을 하는 요리사의 책임과도 연결된다. “한국에서 한국인 손님이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면 우연히 맛없는 가게를 만났다고 생각하겠지만, 해외에서 현지 손님이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면 그분에게는 ‘한식이 맛없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간장게장은 유명 전문점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린 맛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그 경험 때문에 게장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하수오의 게장을 먹은 뒤, 한국에서 이미 게장을 경험했던 손님들조차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접하는 분에게도 맛있게 다가가고, 이미 잘 알고 있는 한국인에게도 새롭게 느껴지는 한식. 그것이 제가 간장게장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입니다.”

 

한식의 상차림을 담아낸 반상

반상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작은 그릇 열여섯 개에 김 마리네이드, 오징어채 고추장무침, 배추김치, 구운 채소, 콩나물무침, 여러 나물과 장아찌, 멸치, 창자젓 등이 정갈하게 놓인다. 그에게 반찬은 “밥과 같은 존재”다. 항상 밥상에 있어 너무 당연하게 먹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음식이다. 하수오에서는 그런 평범한 반찬을 하나하나 다시 바라본다.

특히 중요한 것이 기름이다. 장이나 발효식품은 메뉴와 시기에 따라 직접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기름만큼은 흰깨와 검은깨, 흰들깨와 검은들깨를 목적에 따라 볶는 정도를 달리해 그때그때 짜서 사용한다. 모든 종류를 항상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두 종류 이상의 기름을 상시 사용한다. 최근 한국의 방앗간 자체가 일본 여행객들에게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되면서 직접 짠 참기름과 들기름의 차이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손님도 늘었다. 한식의 현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맛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하수오의 삼계탕

삼계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서 적합한 닭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미즈타키용 닭은 좋은 백색 육수를 내지만 장시간 끓이거나 한 마리를 통째로 제공하기에는 육질과 크기가 맞지 않았고 공급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일반적인 영계를 기본으로 코스에 따라 오골계를 사용하고 인삼 등 약선 재료를 충분히 넣는다. 뽀얀 국물은 농축된 맛을 가지면서도 중국식 파이탄처럼 무겁지 않은 맑은 뒷맛을 추구한다. 일본의 좋은 식재료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왜 그 재료와 조리법으로 발전했는지를 이해한 뒤 현지의 재료에 맞게 다시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김치에서도 나타난다.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일본의 배추와 무는 그대로 먹기에는 훌륭하지만,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한 한국 채소를 전제로 발전한 김치를 만들 때는 오히려 어려움이 생긴다. 결국 한 지역의 음식은 그곳에서 자라는 재료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한국과 일본 모두 발효 문화의 역사가 깊지만, 현재 그는 두 나라의 발효를 성급하게 융합하기보다 먼저 “한국의 전통적인 장과 발효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

RED U-35에서 최종 5인인 GOLD EGG에 선정된 이정준 셰프

일본에서 한식의 기준점을 만들다

2025년 이정준 셰프는 일본의 젊은 요리사를 발굴하는 요리 경연대회 RED U-35에서 511명의 참가자 가운데 최종 5인인 GOLD EGG에 선정됐다. 최종 무대의 질문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AI와 대화하는 형식의 1인극을 통해 “먹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지금 연결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풀어냈다. 새로운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과거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미래 요리사의 역할이라는 그의 답은 지금 하수오에서 하는 일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수오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 연속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으로 소개됐고,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해외 우수 한식당으로도 지정됐다. 타베로그에서도 2024년에 이어 2026년 ‘아시아·에스닉 TOKYO 백명점’에 선정됐다. 지금 그는 일본 생활이 긴 아내 권은실 매니저와 함께 레스토랑을 꾸려간다. 권 매니저는 인사·노무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플로어를 책임지는 한편, 일본에서 경험을 쌓으려는 한국의 젊은 요리사들과 이들을 받아들이는 일본 레스토랑을 연결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정준 셰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수상이나 평가보다 훨씬 명료하다. “제대로 된 한식을 일본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과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한식당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는 외형적인 유행에 집중한 나머지 평균적인 음식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해외에서 먹은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한식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으로서든 하수오라는 브랜드로서든 “믿고 먹을 수 있는 한식의 기준점”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하수오의 이정준 셰프

앞으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한국 각 지역의 향토음식과 전통음식을 더 깊게 탐구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그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부러 그 지역까지 찾아가야 비로소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아직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가 한 사람의 요리사와 하나의 레스토랑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한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 공감하면서 사업적으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 더 큰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꿈이다.

프렌치 요리사를 꿈꾸며 일본으로 건너왔던 이정준 셰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 자신의 가장 익숙한 음식으로 돌아왔다. 감자탕과 소고기무국, 게장과 삼계탕, 밥상 위에 늘 존재했던 반찬과 갓 짜낸 참기름과 들기름까지.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익숙한 것을 해체하기보다, 너무 익숙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것. 그가 일본에서 만들어가는 한식은 지금 그 방향으로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언젠가 하수오가 그가 바라는 대로 누구나 인정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한식당’이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한국 음식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한식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락

Writer 이정윤(Julia Lee)
Editor Mingchu Korea
Photograpger HAS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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