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처럼 맞물리는 구움과자와 한국적인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로 주목받아온 파티세리 아모니. 손연화 파티시에는 익숙한 재료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하고, 하나의 과자에 색과 형태를 더하며 아모니의 제품을 발전시켜 왔다. 레스토랑의 파티시에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된 지금, 그의 관심은 디저트를 잘 만드는 일에서 더 넓은 영역으로 향하고 있다. 아직 시도하지 못한 재료가 있고, 만들어보고 싶은 제품도 많다. 손연화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아모니의 구움과자 패키지
서울 성수동에 자리한 파티세리 아모니(Pâtisserie Armoni)는 유럽식 제과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재료와 맛을 접목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제과점이다. 휘낭시에와 샌드쿠키 등의 구움과자를 중심으로 제품을 구성하며, 된장과 쌍화, 흑임자, 율무 등 제과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활용한다. 계절과 주제에 따라 선보이는 시즌 컬렉션과 선물용 패키지도 아모니의 주요 작업이다. 특히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구움과자들이 한 상자 안에서 하나의 그림처럼 맞물리는 구성은 아모니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과자를 개별적으로 즐기는 것은 물론, 상자를 열고 그 안에 담긴 전체 모습을 감상하는 과정까지 제품의 일부로 설계했다.
이러한 작업을 이끄는 손연화 파티시에는 뉴욕과 서울의 정식당에서 디저트를 만들다 2022년 자신의 브랜드인 아모니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뚜렷한 브랜드의 방향을 정해두었던 것은 아니다. 기술자로서 자신의 가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비교적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면서 새로운 문제들과 마주했다. 맛있는 디저트를 만드는 것과 손님이 기꺼이 선택하는 제품을 만드는 일은 달랐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려면 안정적인 생산 환경도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손 파티시에의 관심은 개별 제품을 넘어 브랜드 전체로 넓어졌다.
요리사가 되려다 파티시에가 된 사람
손연화 파티시에가 처음부터 제과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도 컬리너리 아츠(Culinary Arts)를 공부하며 요리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디저트 분야에서 인턴십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수업 중간중간 접했던 제과·제빵 수업이 꽤 재미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막상 시작해보니 제과는 예상보다 훨씬 자신의 성격에 잘 맞았다. 재료를 정확히 계량하고 미세한 차이를 조정하며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예쁜 것을 만드는 일에도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다시 요리사로 돌아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직 이것보다 재미있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제과를 계속해온 이유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와 정식당 뉴욕·서울에서의 시간을 거치며 매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태도를 익혔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쌓은 경험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것을 배웠다.
레스토랑을 떠나 자신의 제품을 만들기까지
정식당에서 일하던 시절 손연화 파티시에의 일은 레스토랑의 코스를 마무리하는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플레이티드 디저트는 코스의 일부로 제공됐고, 홀 직원이 손님에게 메뉴를 설명했다. 파티시에가 손님을 직접 만나 제품을 판매할 일은 거의 없었다.
정식당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손연화 파티시에
자신의 제과점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직접 만든 제품을 손님에게 설명해야 했고, 손님이 그 설명과 제품을 보고 실제로 구매할지를 결정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많은 시간과 기술을 들였더라도 그 가치가 손님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서는 한 접시를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아모니에서는 제품의 이름과 설명, 가격, 포장, 판매 방식까지 고민해야 했다.
손 파티시에는 이때부터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맛을 어떤 형태로 보여주고 전달하는지까지 제품의 일부였다. 레스토랑에서 익힌 기술은 그 영역을 넓혀가는 기반이 됐다.
처음에는 만들고 싶은 디저트를 잘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운영을 거듭하면서 그 제품들이 모여 어떤 가게를 이루게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모니를 시작해야 했던 이유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기보다 운영하면서 그 이유를 만들어온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가게의 모습이 구체화되면서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도 더 분명해지고 있다.
된장에서 시작해 고추장과 간장까지
아모니의 제품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한국적인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다. 손연화 파티시에는 유럽식 제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맛을 새롭게 표현해왔다. 아모니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시도에 대한 반응이 모두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된장 맛 쿠키나 쌍화 맛 디저트를 누가 사 먹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파인다이닝에서나 경험할 법한 조합을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디저트에 적용한다는 것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아모니의 된장가나슈 샌드쿠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맛을 알고 찾아오거나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손님들이 생겼다. 손 파티시에는 소비자들이 갑자기 낯선 맛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맛을 경험할 기회가 많아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제과점이 늘어나면서, 한 번쯤 먹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맛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때는 버터와 달걀, 밀가루, 아몬드 가루, 초콜릿 등 제과의 기본 재료와 조화를 이루는지 살핀다. 된장 캐러멜 역시 된장과 캐러멜의 비율을 반복해서 조정하며 원하는 맛을 찾았다.
“된장을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결국 하나의 디저트로서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된장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또 문제지요.”
그러나 그가 새로운 재료를 선택하는 이유가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재료가 있다면 어떻게든 디저트로 만들어보려고 방법을 찾는 편이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지 않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시도한다. 지금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재료가 있다. 고추장과 간장이다. 된장은 캐러멜을 통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았지만, 고추장과 간장은 아직 마음에 드는 맛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가 느끼기에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특유의 향과 뉘앙스가 버터나 초콜릿, 크림처럼 유지방이 많은 제과 재료와 만났을 때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요리에서는 매력적인 발효향이 디저트에서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특징을 없애면 해당 재료를 사용할 이유도 사라진다. 그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언젠가는 된장에 이어 고추장과 간장까지 각각의 맛을 살린 '장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다.
한 상자 안에 새로운 제과의 형태를 만들다
손연화 파티시에의 관심은 재료와 맛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모니를 시작할 당시 한국적인 디저트를 주로 맛에서 찾았다면, 이제는 형태와 색, 문양, 포장 방식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반드시 한국적인 재료를 사용해야 한국적인 디저트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식 제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제품의 디자인과 구성에서 한국적인 인상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모니의 시즌 구움과자 세트는 이러한 생각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구움과자를 맛있고 멋스럽게 만들어 담는 패키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만으로는 아모니만의 특징을 만들기 어렵다고 느꼈다. '세상에 아직 없는 것,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고민하다 오히려 단순한 구성을 벗어나 색과 형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사용해보기로 했다. 각각의 구움과자는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지면서도 모두 모였을 때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추석과 설날 구움과자 패키지
“저는 보통 맛보다 형태와 색에서 먼저 시작합니다.”
시즌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나 색을 먼저 정한 뒤 생각을 적으며 구성을 발전시킨다. 비슷한 색으로 전체적인 통일감을 줄지, 보색으로 강조할 부분을 만들지, 서로 다른 크기의 구움과자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한다. 한 상자의 전체적인 구성이 정해진 뒤에야 각각의 모양과 색에 어울리는 맛을 결정한다. 언뜻 맛보다 디자인을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맛의 중요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파티시에에게 맛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은 기본이고, 오히려 그 외의 요소에서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더 많이 살피려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생산에서는 또 다른 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모니는 택배로도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배송 과정에서 구움과자가 움직이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많은 수량을 만들더라도 형태와 색, 배치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고객에게 도착한 제품은 사진과 최대한 같은 모습을 갖춰야 한다.
맛과 디자인, 패키지, 생산 과정, 배송 이후의 상태까지 모두 검토해야 비로소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는 셈이다. 손 파티시에는 이러한 여러 요소가 고르게 완성된 상태를 하나의 '육각형'에 비유한다. 한 가지 요소가 뛰어난 제품보다 어느 부분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가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구움과자 한 상자를 만드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모니는 선물용 패키지를 만드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선물을 고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손 파티시에는 그 마음을 생각하며 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상자를 처음 받아보고 포장을 열고, 설명서를 읽고, 서로 다른 과자들의 디자인을 살펴본 뒤 하나씩 맛보는 과정까지 모두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그가 의도한 제품의 역할이 완성된다. 처음에는 새로운 맛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던 아모니가 이제는 구움과자를 통해 시각적인 구성과 선물의 경험까지 제안하는 브랜드로 작업을 넓혀가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만들기 위해 배우는 선택
새로운 재료를 찾아보고, 시즌마다 다른 구성을 고민하고, 지금껏 만들지 않았던 제품에 도전하는 일은 손연화 파티시에에게 여전히 즐겁다. 그러나 아모니의 규모와 역할이 커지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졌다. 사업 초기에는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규모나 조건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다. 제작 일정이 촉박하거나 생산량이 많아도 일단 가능한 방법부터 찾았다.
지금은 다르다.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오히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무리한 제작 기간을 잡지 않으려 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량과 일정, 작업의 방향까지 확인한 뒤 일을 선택한다. 새로운 기회를 하나 더 얻는 것보다 이미 맡은 제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파티시에 손연화와 대표 손연화는 여전히 자주 충돌한다.
서울 불꽃축제의 밤을 한 상자에 담은 한화와의 협업 패키지
파티시에로서는 시간과 손이 많이 들더라도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반면 대표로서는 생산성과 원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시간, 매장 전체의 운영까지 생각해야 한다. 만들고 싶은 제품이라고 해서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분들이 예술성과 사업성을 모두 가져가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실제로 운영해보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욕심을 조금씩 덜더라도 예술성과 사업성을 가능한 한 비슷한 비율로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웜그레이테일과의 협업으로 선보인 구움과자 패키지
오히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제품의 완성도만큼 생산과 운영의 조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파티시에 혼자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직원들과 함께 일정한 수준의 제품을 지속해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그는 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또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쌓이면 지금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제과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맛을 개발해온 손연화 파티시에에게 이제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 역시 배워가야 할 분야가 된 셈이다.
아직 보여줄 것이 남아 있는 파티시에
손연화 파티시에는 과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형태를 발명하겠다는 뜻보다는, 누군가 오랜 시간 고민한 제품을 쉽게 자신의 것처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온아우미에서의 외부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손연화 파티시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마주하면 가능한 한 다른 방향을 찾고, 꼭 필요한 요소라면 아모니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려 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려는 것은 아니다. “저에게 새로움은 이제 목표라기보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동시에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생겼다. 한 번 화제가 되는 제품보다 언제 찾아와도 맛있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드는 일이다. 자신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는 데에는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대신 자신이 만든 디저트를 먹어본 사람들이 '그 사람이 만드는 것은 믿고 먹을 수 있다'고 느꼈으면 한다. 그 믿음이 친구나 부모님과 함께 먹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가게를 만들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 많은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됐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만큼 배워야 할 것도 많아졌다. 그는 아직 제과보다 재미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해보고 싶은 재료가 있고, 완성하지 못한 제품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할 문제들도 남아 있다.
손연화 파티시에의 다음 작업이 궁금한 이유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과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을 함께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니의 다음 모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여전히 만들어볼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