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음식 곁에 피어난 다정한 진심, 온지음 이사라 매니저 겸 헤드 소믈리에

온지음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온화한 얼굴. 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치열하고 뜨거운 열기를 정갈하게 다듬어, 손님의 테이블 위로 고스란히 옮겨놓는 사람. ‘단단함’과 ‘따뜻함’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온도로 진심을 전하는 온지음의 이사라 매니저 겸 헤드 소믈리에의 이야기.

진정성 넘치는 배려와 섬세한 교감으로 다이닝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이사라 소믈리에와의 만남은 늘 마음속 깊은 곳에 묵직한 편안함을 안겨준다. 푸드 스타일링을 전공했지만, 정작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요리에는 서툴렀던 그가 어떻게 와인을 다루는 소믈리에를 꿈꾸게 되었을까? 매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주방의 쉴 틈 없는 호흡과 테이블 위 손님의 다채로운 표정 사이에서, 그가 흔들림 없이 묵묵히 지켜온 호스피탈리티 진짜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보았다.

온지음의 이사라 소믈리에

 

서툰 주방을 떠나 마주한 새로운 길, 1990년 샤또 딸보

이사라 소믈리에의 출발점은 화려한 다이닝의 홀이 아닌, 무대 뒤편의 치열한 주방이었다. 푸드 스타일링을 전공하며 미식의 세계를 탐구했지만, 그는 스스로 요리에는 큰 소질이 없다는 현실을 일찍이 마주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보다 유독 예민하게 발달한 감각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복합적인 맛의 층위를 짚어내는 혀, 직관적으로 ‘간’을 보는 탁월한 능력이었다. 23살 무렵, 현장 실습을 나간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가 그의 숨겨진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너는 주방 안에서 불을 다루는 것보다, 홀에서 손님과 호흡하는 서비스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건넨 한마디의 조언은 훗날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준 결정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이러한 재능에 불을 지피며 그를 본격적인 와인의 세계로 이끈 것은, 지인에게 우연히 선물 받은 한 병의 ‘샤또 딸보(Chateau Talbot) 1990년 빈티지’였다. 난생처음 제대로 맛본, 잘 숙성된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뿜어내는 흙내음과 가죽 향, 그리고 입안을 황홀하게 감싸는 우아한 타닌은 그를 현장의 삶으로 이끌었다. 와인 수입사의 현장 영업직으로 뛰어든 그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무거운 와인 박스를 나르고, 수많은 와인병을 쓰다듬으며 라벨을 외웠다. 활자로 갇혀있는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며 와인을 익힌 시간이었다.

몸이 너무 고단해 잠시 사무실의 비서직으로 떠나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니터 앞의 고요함과 평면적인 일상 속에서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식당 특유의 땀 냄새와 생동감 넘치는 활기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프렌치 비스트로 ‘고메트리’의 오픈 멤버로 다시 현장에 돌아왔고, 텅 비어있던 와인 리스트를 자신의 감각과 손으로 하나하나 채워가며 전문 소믈리에로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온지음의 내부 전경 (Photo: 충근)

 

온지음, 마음이 동한 진짜 한식의 뼈대를 만나다

프렌치 비스트로와 내추럴 와인 바를 거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는 어느 순간 다이닝에 대한 깊은 갈증이 찾아왔다. 조금 더 낯설고, 다루기 어려우며, 깊이가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는 국내 파인다이닝 중에서도 온지음이 선보이는 요리의 뚜렷하고도 강직한 철학 앞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이게 진짜 한식이다.” 화려한 기교나 한껏 꾸며낸 플레이팅으로 시선을 끄는 대신, 본연의 식재료가 가진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단아하고 묵직한 선명함에 반해 그는 2021년 여름, 마침내 온지음에 합류했다.

온지음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넘어선다. 과거에 잊힌 한식의 원형을 고증하고, 이를 현대적인 맥락으로 복원하며 연구하는 심도 깊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평범한 직업인으로서의 소믈리에를 넘어선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한식에 인생을 건 장인들이 밤을 새워가며 빚어낸 요리를 손님에게 선보이고, 그 철학을 언어로 번역해 설명하는 ‘첫 번째 메신저’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주방과 홀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제철 식재료의 미세한 수분감이나 조리의 미세한 변화로 음식의 결이 달라지는 날이면, 셰프의 본래 의도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맛을 본다. “오늘 채소의 텍스처가 훌륭한데, 산미가 조금 더 받쳐주면 와인과 곁들이기 훨씬 좋겠어요.” 그의 조심스럽지만 예리한 제안을 셰프들이 기꺼이 수용하고 즉각적으로 요리의 밸런스를 조율하는 모습에서, 이 고요한 공간을 가장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끈끈한 연대와 신뢰를 엿볼 수 있다.

 

우리말을 세심하게 골라 쓰는 이사라 소믈리에의 서비스

 

배려가 묻어나는 고운 언어, 그리고 본능을 일깨우는 단정한 페어링

이사라 소믈리에의 서비스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대목은 단연코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온도’다. 그는 손님이 온지음이라는 특별한 시공간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도록, 공기 중에 흩어지는 미세한 디테일 하나까지 결코 놓치지 않는다. 한식 파인다이닝이 가진 특유의 서정적인 정취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그는 ‘샐러드’나 ‘소스’라는 외래어 대신 ‘겉절이’, ‘무침’, ‘곁들임’이라는 질감 고운 우리말을 세심하게 골라 쓴다. 혹여 음식의 간이 세게 느껴질 수 있는 요리를 낼 때도 “음식이 짭니다”라는 건조한 표현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간을 조금 더 했으니, 내어드린 밥과 곁들이시면 풍미가 훨씬 조화롭습니다”라며 손님의 미식 경험을 기분 좋고 능동적인 방향으로 부드럽게 이끈다.

이러한 다정함과 세심함은 그의 와인 페어링에서도 고스란히 빛을 발한다. 값비싼 캐비어나 트러플 대신, 바로 지금 이 계절 이 땅에서 자라난 가장 훌륭한 제철 식재료를 내어놓는 온지음. 잎사귀 하나의 방향, 김치가 썰린 각도 하나까지 정갈하게 통제된 그 단정한 음식들의 여백에, 그는 무심한 듯 정교하게 와인의 향을 덧입힌다. 한식과 와인을 매칭하는 과정에서 그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셰프들과 호흡하며 몸에 스며든 맛의 기억을 꺼낸다. 이는 머리로 계산하는 공식을 넘어, 셀 수 없이 많은 테이스팅 끝에 얻어진 본능적인 직감으로 발휘된다. 음식의 보이지 않는 빈틈을 찾아 와인의 산미와 미네랄리티로 조용히 채우고, 셰프가 흘린 땀방울이 온전히 손님의 환한 미소로 번지게 돕는 것. 그것이 그가 빚어내는 온지음 페어링의 진짜 의미이자 미학이다.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서비스에 임하는 이사라 소믈리에

 

한계를 넘어 ‘말의 힘’을 기르다, 여성 리더의 유연한 돌파력

과거 남성 중심적이던 주류 업계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매일 밤 극심한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치열한 다이닝 현장. 하지만 이사라 소믈리에는 여성 소믈리에로서 현장에서 마주할 법한 물리적인 제약이나 세상의 편견에 결코 매몰되지 않았다. 그가 온전히 집중한 것은 외부의 평가나 시선이 아니라, 오직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었으며 ‘어떻게 하면 내 말이 손님과 주방 모두에게 묵직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치열하고 본질적인 고민뿐이었다.

실전 경험과 지식이 켜켜이 쌓이면서, 다이닝 씬 안에서 성별의 경계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희미해졌다. 고객의 테이블 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성별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태도와 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임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체력으로 무거운 와인 박스를 번쩍 들어 나르고,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우려를 묵묵한 성과로 이겨내며, 그는 자신만의 부드럽지만 강인한 방식으로 온지음이라는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해 나갔다.

최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화되고 있는 아시아 미식 씬에서 치열하게 활약하는 후배들을 향한 그의 조언은 명쾌하면서도 따뜻하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좋은 소믈리에’라는 정형화된 상을 급하게 쫓아가기보다는, 자신의 현장에서 충분히 넘어지고 깨지며 본인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주니어 시절, 막연히 ‘어떻게 하면 좋은 소믈리에가 될까’를 고민하던 서툰 청년은, 어느덧 매니저라는 묵직한 직함을 달고 ‘우리가 함께 숨 쉬는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넓은 시야의 리더로 훌쩍 성장해 있다.

 

따뜻한 위로와 완벽한 휴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사라 소믈리에

 

눈물에 담긴 진심, 그리고 백발의 소믈리에를 꿈꾸며

온지음이 무려 7년 연속으로 미쉐린 1스타를 지켜낸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평일 점심과 저녁 영업만 하는 곳, 예약조차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이곳에 귀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찾아와 주는 손님들에 대한 벅찬 고마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저희 음식과 와인을 드시고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테이블 세팅을 위해 냅킨 하나를 접는 순간에도 제 온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화려한 미쉐린의 별 개수나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손님이 머무는 3~4시간의 짧은 다이닝 여정을 따뜻한 위로와 완벽한 휴식으로 채우고 싶다는 그의 뭉클한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온지음의 이사라 소믈리에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이사라 소믈리에는 거창한 타이틀이나 화려한 청사진을 꺼내놓지 않았다.

“70살, 80살,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식당 한편에서 멋있게, 그리고 다정하게 손님들의 와인을 따르고 싶어요.”

화려한 기교나 꾸밈으로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식사를 즐기는 누군가의 곁에서 묵묵히 행복 한 잔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이사라 소믈리에. 그가 오늘 온지음의 테이블 위에서 보여준 맑고 다정한 진심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값비싼 와인보다도 훨씬 더 오래도록 손님들의 가슴 속에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단락

Writer 김성현(James Kim)
Editor 이정윤(Julia Lee)
Photographer 김성현(Jame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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