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식업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2026 뉴욕 최고의 셰프로 선정된 김훈이 셰프가 거쳐온 한식의 여정.
2026년 6월 15일, 미국 시카고 리릭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한 한국인 셰프가 올랐다. 그가 받은 상은 미국 외식업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James Beard Awards)의 ‘Best Chef: New York State’ 부문이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심사위원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뉴욕에서 메주(Meju)와 단지(Danji)를 운영하는 김훈이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뉴욕은 사실상 서울 다음으로 가장 역동적인 한식 도시다. 아토믹스, 주아, 오이지 미를 비롯해 수많은 한국 레스토랑이 미식의 흐름을 이끈다. 그러나 15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당시 미국에서 한식은 여전히 바비큐와 비빔밥 같은 익숙한 메뉴로 제한적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고,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식 레스토랑도 없었다. 2010년 12월, 바로 이런 시기에 김훈이 셰프는 맨해튼 헬스키친에 36석 규모의 한식 모던 레스토랑 ‘단지(Danji)’를 열었다.
김훈이 셰프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세계 최초의 미쉐린 스타 한식당을 연 셰프’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한식 다이닝이 주류 퀴진으로 올라섰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레스토랑 단지를 오픈한 김훈이 셰프
의대생, 셰프의 길을 선택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10살 무렵 미국 뉴욕에 정착한 김훈이 셰프. 한국계 이민자 가정의 많은 자녀들이 그랬듯, 그에게도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공부에 소질이 있던 덕에 그는 UC 버클리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이후 의대에 진학했다. 스스로도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어머니 역시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요리는 직업보다는 취미에 가까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음식에 대한 감각은 있었지만, 그것이 인생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환점은 의대 생활 중 찾아왔다. 병원에서 일하고 의학을 공부하며 점점 자신이 이 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두통과 같은 신체적 고통이 찾아왔다. 의사가 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그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확신은 점점 사라졌다.
결국 그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의대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휴학을 한 뒤 평소 관심이 있던 요리를 배우기 위해 뉴욕의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FCI)에 등록했다. 현재의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 이후 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과 통합된 그 학교는 당시 뉴욕에서 전문 요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기관이었다.
주방에서 들어서자 그를 압박하던 두통은 사라졌고, 요리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뜨겁고 긴장감 넘치는 주방에서 몸을 써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곳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때 저는 의사보다 훨씬 더 좋은 셰프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김훈이 셰프가 회상하는 것처럼, 비로소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고 더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FCI 과정 중 그는 뉴욕의 대표적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Daniel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규직 제안을 받았고, 그는 의대로 돌아가는 대신 주방의 흰 조리복을 입는 삶을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가족의 반발도 심했다. 아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의대 졸업을 앞둔 아들이 갑자기 요리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 당시에는 더욱,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김훈이 셰프에게는 새로운 삶의 길이 보였다.
다니엘에서의 프랑스 요리의 정교함과 주방의 규율을 배우고, 이후 그는 또 다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마사(Masa)에서 일하며 일본 요리의 절제와 재료 중심의 미학을 익혔다. 점점 요리를 배울수록 셰프는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겠다는 열망이 커졌다. 김 셰프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이 기술만이 아니라 자기 문화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2010년 맨해튼 헬스키친에 오픈한 한식 모던 레스토랑 ‘단지’
정체성, 한식, 뿌리를 찾는 여정, 단지
김 셰프의 출발점은 ‘한식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살아 있는지를 물었다. 요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맛과 마음을 전하고,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식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그가 찾은 답이었다. 뿐만 아니라 생물학과 의학을 공부했던 김훈이 셰프에게, 한국 음식 안에 담긴 발효와 건강, 재료와 시간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콩이 된장으로 변하는 과정, 발효와 숙성이 풍미와 소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 그에게 주방은 또 다른 실험실이었다.
단지를 오픈하고 김 셰프는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바탕으로 하되, 뉴욕의 식문화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세련된 형식과 완성도를 갖춘 요리를 선보였다. 최고의 주방에서 배운 기술과 자신이 가진 과학적 접근을 더했고, 작은 접시 요리와 세련된 플레이팅, 뉴욕의 식문화에 맞춘 접근 방식은 미국 미식계가 한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지는 미쉐린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고, 뉴욕 타임즈 등에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자리잡았다.
한잔에서 선보인 생선조림(좌), 떡볶이(우)
한국의 주막과 술 문화, 한잔
이후 2012년 선보인 ‘한잔(Hanjan)’은 한국의 주막과 술 문화를 뉴욕식 캐주얼 다이닝으로 확장한 버전이다. 당시만 해도 막걸리와 전통주, 다양한 안주 문화를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알리는 시도는 매우 드물었다. 메뉴도 더욱 소탈하고 캐주얼했다.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 돼지족 요리, 고등어, 김치볶음밥, 전, 매콤한 안주까지 한국인의 일상 속 메뉴를 뉴욕의 테이블 위에 가감없이 올려냈다. 뉴욕타임스는 김훈이 셰프를 뉴욕에서 한국 음식을 가장 잘 해석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했고, 한잔에 별 두 개를 부여했다. 피트 웰스는 한잔을 2013년 가장 주목할 만한 신생 레스토랑으로 꼽았다. 한잔은 한식의 생활성과 술 문화를 뉴욕에 소개하며 8년간 운영했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폐업했다.
‘리틀 반찬 숍(Little Banchan Shop)’에서 판매하는 김치, 장아찌, 나물, 조림 등
가정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
뉴욕에 첫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친 뒤, 그는 더욱 소탈하고 본질적인 한식의 모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22년 롱아일랜드시티에 ‘리틀 반찬 숍(Little Banchan Shop)’을 열고, 한식 가정식의 본질, 즉 한식의 핵심이 메인 요리 하나가 아니라 밥, 국, 김치, 장, 반찬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뉴욕의 일상으로 가져왔다. 김치, 장아찌, 나물, 조림 등을 판매하면서, 손님들이 집에서도 한국식 식탁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2022년 오픈한 김훈이 셰프의 메주
리틀 반찬 숍 안쪽에는 단 9석 규모의 셰프 카운터가 있다. 이곳이 메주(Meju)다. “뉴욕의 한국 파인다이닝 신이 성장하는 동안 오히려 ‘전통적인 한국 음식의 기준점’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30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요리를 드신다면, 당연히 한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진정한 한식’의 모습을 대답하기 위한 과정이 녹이 있는 곳입니다.” 김훈이 셰프는 많은 레스토랑이 셰프 개인의 창의성과 글로벌 감각을 강조하지만 정작 한국 음식의 근본을 설명하는 공간은 부족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며, 메주는 바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고 덧붙였다.
김 셰프는 매일 메주에서 직접 고객을 만난다.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손님들은 카운터에 가깝게 둘러앉아 셰프가 풀어내는 장의 역사와 발효 과정, 식재료 생산자, 한국 음식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손님과의 끊임없는 대화,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이 메주의 식사 경험을 완성한다. 오픈 1년 뒤인 2023년 미쉐린 스타를 받고, 매일 꽉 채운 한 테이블로 운영하는 메주를 위해 김 셰프는 여전히 직접 시장을 찾고 직접 요리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가장 한식다운 한식'을 화두로 삼은 김훈이 셰프
2026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뉴욕 최고의 셰프
올해 6월, 김훈이 셰프는 바로 이 메주로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Best Chef: New York State’를 수상했다. 세계 최초의 미쉐린 스타 한식당을 만들었던 셰프는 이제 미국 요리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셰프가 되었다. 단지 이후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 온 한식에 대한 그의 집요한 여정이 다시 한 번 미국 외식업계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 음식이 왜 가치 있고 지금도 유효한지, 그리고 왜 미래에도 의미가 있을 것인지를 설명하고자 한 그의 고민은 주방에서 테이블로, 셰프의 마음에서 고객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메주의 룰이 있어요. 뉴욕에서 제일 맛있는 한식당보다 뉴욕에서 제일 한식다운 한식을 하는 거예요. 식재료도 중요한데, 뉴저지의 래니스 팜(Lani’s Farm)에서 애호박과 풋고추 등의 한국 식재료를 재배해 사용하죠. 돌이켜 보면 제가 단지를 오픈하기 전에,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배운 적은 없어요. 프렌치와 일식을 배우며 요리를 기술과 맛으로 접근했죠.
하지만 전통 한식은 ‘맛’으로만 요리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진짜 한식의 본질은, 먹을 것이 귀하던 가난한 순간에도 어머니들이 어떻게 부족한 영양을 최대한 맛있게 섭취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발전시켜 온 ‘사람들의 음식’이라는 거예요. 그 핵심이 발효에 있고요. 지금 저도 11년째 장을 담그고 발효하며 이곳에서의 한식을 이어가고 있어요. 요리의 주인공은 한식 발효입니다. 장과 젓갈, 쌈장, 김치까지 발효와 숙성이 없다면 전통 한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메주의 된장 순두부 찌개
발효 기법을 사용하는 문화권도 많지만, 김 셰프는 한식 발효만의 특별한 강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메주를 이용한 콩 발효를 보세요.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자연 발효 된장의 바실러스균은 끓여도 살아남고, 프리바이오틱스가 남아 장을 건강하게 해요. 하지만 일본식 콩 발효인 미소는 열에 훨씬 약하거든요. 세계적으로도 발효가 화두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감칠맛과 풍미를 위해 기술적으로 발효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처럼 문화 속에 녹아든 발효의 정신과는 꽤 다르죠.”
그는 팬더믹 이후 건강이 미래라고 확신한다. 그 비전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전통적인 한식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때로 가정식보다 차라리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이 더 건강한 경우도 많은데, 한국에선 ‘엄마의 집밥’이 곧 건강한 음식과 동의어잖아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인 거예요. 메주에서는 이런 한식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번 제임스 비어드에서 뉴욕이라는 세계 최고의 도시에서 베스트 셰프 상을 받은 소감을 묻자, 그는 그저 운이었다고 말한다. “저보다 더 뛰어난 셰프도 얼마나 많겠어요. 저 또한 작년보다 올해 더 잘 했기 때문에 이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요리사들은 항상 주방에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이런 상을 받을 날도 왔나 봅니다.”
메주에서 요리 중인 김훈이 셰프
김훈이 셰프가 바라보는 앞으로의 모습은 어떨까.
“10년 전, 지금을 정확히 예상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정해진 답을 정하고 달려가는 것은 제 방식은 아니에요. 매 순간, 미래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그 또한 계속 바뀌어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매일에 충실하며 최선의 답을 찾고,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10년이 지나 있더군요.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10년을 또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