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s a Chef : 체력과 정신력, 가정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끈기와 진정성으로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쌓아가며, ‘여성 셰프’라는 수식어를 넘어서려고 한다.
우리는 여성 셰프를 이야기할 때, 왜 ‘셰프’란 호칭 앞에 ‘여성’을 붙여 성별을 강조하는가? 이 질문을 토대로 그간 여성 셰프들이 주방에서 겪어온 구조적 긴장감, 유연하게 자리 잡은 리더십의 형태, ‘여성스럽다’란 표현의 이중적 잣대 등을 살펴보려 한다. 현 시점에서 ‘셰프’란 이름 앞엔 어떤 수식어가 필요하고, 오늘의 주방은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시간과 함께 무르익는 삶
많은 셰프들은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 요리로 삶을 살아낸다. 셰프는 요리로 손님의 시간을 기억하고, 손님은 식사로 셰프의 생애를 지켜본다.
레에스티우 이새봄 셰프는 이것을 지속형 관계라 말한다. 특정한 과거를 회상하기보단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생생한 관계의 흐름에서 의미를 찾는다. “아기 때부터 오던 꼬마 손님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올 때마다 감사하고 놀라워요. 키가 30cm는 자란 아이들이 여전히 제 음식을 기억해 준다는 건 셰프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인정인 것 같아요.” 그녀에게 요리는 소비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애와 병행하는 기억이다. 매일 아침, 조금씩 변화하는 식탁 위에서 그녀는 사람들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윤예랑 셰프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의 중심에 아들을 떠올린다. “아들이 12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저의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왔어요. 그동안은 아이가 어릴 때 혹시 다른 손님에게 방해될까 봐 데려오지 못했거든요. 저희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왔고, 저는 처음으로 엄마로서, 아이에게 ‘셰프’라는 제 존재를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었죠.”
그녀에게 셰프란, 외부에서 정의하는 ‘커리어’를 넘어 삶의 선택 자체에 대한 자부심과 존재의 증명이었다. “저는 워커홀릭이에요. 늘 미안하고 부족했지만, 아들이 ‘엄마는 멋진 일을 하고 있고, 난 그런 엄마를 존경한다’고 말해 줬을 때, 어떤 미쉐린 스타보다 값졌어요.” 그녀에게 성취란 타인의 기준이 아닌, 삶의 윤리와 연결된 자기 효능감의 문제다. 그만큼 요리는 그녀가 자신을 실현하고 증명하는 가장 내밀한 방식이다.
조은희 셰프는 과거의 시간을 오늘의 식탁에 올려 놓는 과정 속에 셰프로서의 의미를 찾는다. 고조리서의 기록, 향토 지역의 구술, 그리고 답사 속에서 채집한 오래된 맛을 현대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그에게, 셰프로서의 성취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넘어 사라져 가는 기억을 보호하고 재현하는 시간의 행위다. “우리가 몰랐던 한식의 맛을 복원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멋진 음식이 있었구나’ 하고 알아 주실 때, 그 순간들이 저에겐 가장 뿌듯해요. 그 모든 시간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죠.”
온지음 조은희 셰프에게 요리는 시간을 지키고 기억을 재현하는 행위이기에 전통의 맛을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
장기전, 체력과 자기 관리
셰프라는 삶을 장기적인 호흡으로 이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체력과 정신력, 건강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많은 여성 셰프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요리는 기술 이전에 체력이고, 주방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공간이라고. 고된 노동이 일상이 되는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신체적 근력뿐 아니라 마음의 근력도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많은 경우, 신체적 리듬의 차이, 임신과 출산, 육아의 주체가 되는 문화적 구조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요리를 지속한다는 건 삶 전체를 설계하는 것과 같다.
여성 셰프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오래, 지속적으로, 존엄하게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고려되지 않았다. 조은희 셰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을 언급한다. “좋아서 시작해도 건강과 체력 문제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요. 결혼이나 육아와 맞물려 요리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 분명 존재하죠.” 그녀의 말은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체력과 건강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가족이나 직장 차원에서의 배려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이러한 환경을 선택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권리가 상대적으로 더 제한적이다. “힘들지만, 결혼과 육아의 시기에 힘들더라도 이겨내고 꼭 오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해요.” 여성 셰프가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데는 단단한 마음, 그리고 시스템적 연대가 필요하다.
윤예랑 셰프는 여성 셰프들이 처한 조건을 다층적으로 바라본다. 여성 셰프들을 위한 멘토링과 연대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현장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내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를 짚는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예요. 특히 여성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육아냐? 일이냐?’의 압박 구조가 결국 많은 인재를 업계 밖으로 밀어냅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육아 공동체의 적극적 참여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수다. 윤 셰프는 이를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인력 지속성과 직결된 문제로 본다.
인내할 때 비로소 얻는다
세 셰프는 후배 요리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모두 ‘끈기 있는 마음’을 꼽는다. 주방에서 살아남고, 살아간다는 것은 체력과 열정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신력’이라는 이야기다. “같은 일을 수만 번 반복해야 비로소 재료의 특성과 테크닉의 본질이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이새봄 셰프가 말하는 인내는 견딜 때 얻는 깨달음이다. “참을 인(忍)에 견딜 내(耐), 한자 뜻처럼 참고 견뎌내다 보면,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그녀는 모든 것이 빠르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세상 속에서, 요리는 오히려 반복과 지속을 통해 성숙해지는 유일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레에스티우(L’estiu)의 이새봄 셰프는 끊임없는 집중과 반복, 인내를 통해 비로소 재료와 기술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조은희 셰프도 끈기와 우직함을 강조한다. “진짜 좋아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음식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지 않고는 이 일을 오래 이어가기 어려워요. 긴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일이기에, 건강한 몸과 마음이 중요한데, 단순히 운동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예요.
이젠 모두가 ‘셰프’라는 이름으로
‘여성’ 셰프라는 말에 대한 반발은 다이닝 업계의 오랜 고정관념을 극복하며 노력해 온 이들에게 존재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자 현실적인 과제다. 이새봄 셰프는 논점의 핵심을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본다. 다이닝 업계에서의 성장은 외부 환경보다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전제로 한다. 이 셰프는 다이닝 업계에서 젠더 이슈가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차별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제 오히려 개인이 정체성과 태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세워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이 중심이 되는 시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구조적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한 첫 걸음은 결국 ‘스스로의 존재 방식’에 있다. 그녀에게 변화란 제도나 타인의 인식 이전에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조은희 셰프는 이제 셰프 앞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하고 능력 있는 여성 요리사를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요리인이 만들어가는 일상의 변화가 미래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조 셰프 자신의 ‘지속성’도 업계에 기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된다. “제가 건강할 때까지 쭉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후배들에게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길인 것 같아요. 셰프란 직업이 단기적 성취가 아닌, 시간을 견디고 삶을 덧입혀야 하는 일이니까요.”
윤예랑 셰프는 여전히 ‘여성’ 셰프에 집중하는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제는 셰프로서의 가치와 철학, 요리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초점이 맞춰지기를 바란다. “실제 다이닝 업계엔 여자 리그, 남자 리그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철학과 실력, 태도와 비전이 중심이 되는 기준으로 업계가 작동해야 비로소 ‘여성 셰프’란 말은 사라질 수 있다. “여성이라는 허들을 스스로 만들고, 한계를 규정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주방 앞에서 여성이기 이전에 셰프입니다.” 사실 피해 의식이야말로 오히려 더 큰 족쇄가 된다. “셰프란 모두가 어렵고 힘든 여정이에요. 다이닝 업계는 셰프가 여성이라고 베네핏을 주지도, 핸디캡을 주지도 않아요.”
윤 셰프는 여성이 의존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아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며, 물랑을 통해 치열한 다이닝 업계에서 살아남아 묵묵히 자리를 지켜 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오롯이 진심을 다하면, 지나 온 과정과 시간을 인정 받는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것. “간절히 추구하는 진정성만 있다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 너머의 단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것을 제 삶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어요. 이러한 과정 가운데 ‘여성 셰프’란 단어는 없었어요.”
물랑(Moulin)의 윤예랑 셰프는 성별을 넘어, 오직 진정성과 믿음으로 다이닝 업계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레스토랑에서 시간은 평등하게 흐르고, 숙련은 노동의 밀도 속에서 자라며, 고객과 함께 켜켜이 쌓인다. 그것이 지금의 여성 셰프들이 증명해온, 너무도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진실이다. 이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여성 셰프’라는 이름에 가두지 않고 ‘셰프’ 자체로 존재한다.
물론 여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지금도 어떤 이들에게는, 육아는 커리어를 중단시키는 현실이 되고, 때로는 암묵적인 편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셰프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낡은 벽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다음 세대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되고, 다양한 서사 속에서 더 온전한 자신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내며, 주방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자신만의 문장을 쌓아가는 것이 지금 세대 셰프의 의무이자, 후배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유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