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칵테일을 만나다 : 박지오 셰프 x 손석호 바텐더

디저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디저트> 우승자 박지오 셰프와 칵테일 바 SOKO를 이끄는 손석호 바텐더가 플라야 서울에서 만났다.

박지오 셰프의 자유로움과 손석호 바텐더의 클래식함. 그 사이를 디저트와 칵테일이 섬세하게 오간다. 박지오 셰프가 완두콩과 더덕, 두리안, 캐비아, 똠얌 등 일반적인 디저트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재료로 여섯 가지 메뉴를 구성했고, 손석호 바텐더는 각 메뉴의 산미와 단맛, 향과 질감에 맞춰 다섯 가지 클래식 칵테일을 페어링했다.

 

바 티타산의 박지오 셰프 : 자신만의 언어로 전하는 자유로운 디저트

박지오 셰프는 일찍부터 현장에서 파티시에 경력을 쌓아 왔고, 2023년 디저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디저트>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자신의 매장을 직접 기획하고 실제로 운영해 보는 결승 미션에서, 그는 디저트 카페가 아니라 '디저트에 주류를 곁들이는 바'라는 형식을 택했다. 세이버리한 재료를 끌어들이는 감각과 디저트와 칵테일을 한자리에 놓는 구상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바 티타산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오 셰프

그 구상이 실제 공간으로 완성된 것이 ‘바 티타산(Bar Titasan)’이다. 서울 동빙고동, 호텔 치커리 2층에 자리한 티타산은 플레이팅 디저트와 칵테일, 위스키를 함께 어우르는 디저트 바다. '티타산'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뜻은 없다. 우연히 떠오른 대로 적어 내려간 단어가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비워 둔 자리에 자신의 색으로 의미를 채워가는 방식은 그가 재료를 다루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출발점은 클래식이다. 다만 그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어릴 적 마시던 더덕과 우유, 꿀로 만든 주스의 기억을 디저트로 회상해 내고, 언젠가 인상 깊었던 똠얌꿍의 산도를 소르베로 옮긴다. 공간 역시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오래된 건물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피어나는 버섯과 포자를 모티프로 붉은색과 보라색을 끌어들였다. 다소 낯선 공간과 분위기가 만들어 내는 간극이, 티타산이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인상을 만든다.

 

바 티타산의 전경

 

소코 바의 손석호 바텐더 : ‘클래식’과 ‘퍼펙트’의 기준을 보이는 칵테일

커피바K와 키퍼스를 거치며 이름을 알려 온 손석호 바텐더는 2017년 한남동에 자신의 바 소코(SOKO)를 열었다. 1920년대 어느 응접실을 옮겨 놓은 듯한 공간으로 짙은 색의 가구와 은은한 조명, 재즈와 물소리가 겹치며 누군가의 집에서 편안하게 술을 대접받는 감각을 만든다. 격식을 갖추되 손님을 긴장시키지 않는 거리, 그가 '친근한 격식'이라 부르는 태도가 바와 넓은 테이블 끝까지 고르게 퍼져 있다.

 

1920년대의 응접실을 닮은 소코의 공간

소코는 그가 오래 다듬어 온 클래식 칵테일의 비중을 높이고, 대회를 거치며 완성한 시그니처를 메뉴에 더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방향은 꾸준한 주목으로 이어져, 2022년부터 다섯 해 연속 아시아 베스트 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자신의 바텐딩을 설명할 때 반복하는 단어는 '클래식'과 '퍼펙트'다. 얼음의 상태와 잔의 온도, 재료의 배합은 물론 바텐더의 동작과 서비스의 흐름까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화려한 기술보다 한 잔의 완성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먼저이고, 결국 손님에게 전달되어 인정받는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준이다.

 

불바디에를 만들고 있는 손석호 바텐더

 

디저트와 칵테일의 만남, 그리고 그 이야기

박지오 셰프가 처음 디저트 페어링을 시도한 상대는 와인이었다. 와인 페어링도 충분히 좋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칵테일이라면 페어링할 술을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맛의 방향을 직접 설계할 수 있겠다는 것. 티타산이 디저트와 바를 한 공간에 둔 이유이자, 이번 콜라보레이션이 성립한 시작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순서를 찾아갔다. 박지오 셰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자유롭게 디저트를 구성하면, 손석호 바텐더는 그 디저트를 중심에 두고 잔을 설계했다. 칵테일이 앞으로 나서기보다 디저트가 주인공이 되도록 하되, 그 경험을 한층 풍부하고 즐겁게 만드는 방향이다. 하지만, 클래식을 그대로 옮겨 놓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섯 잔 모두 클래식을 중심에 두면서도, 디저트의 어느 한 요소와 맞물리는 지점마다 재치 있는 트위스트를 더했다. 그렇게 완성된 코스는 채소와 뿌리, 열대 과일과 향신료, 다채로운 산미, 그리고 마지막에는 따뜻한 국물까지, 디저트라는 형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차례로 보여 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디저트, 클래식과 재치 있는 변주가 더해진 칵테일

  

PAIRING 01  완두수프 × LEMONGRASS HOPPER

 

디저트 코스의 시작은 완두콩과 코코넛밀크로 만든 차가운 수프다. 부드러운 질감의 산도를 만들기 위하여, 완두콩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풍미에 코코넛밀크와 치즈를 잇고, 라임과 화이트 발사믹으로 균형을 맞췄다. 프랑스 요리에 자주 쓰이는 타라곤 오일로 마무리하며, 세련된 산미를 더했다.

손석호 바텐더는 여기에 민트와 크림, 카카오를 쓰는 클래식 칵테일 그래스호퍼를 진과 레몬그라스로 변주해 페어링했다. 두 사람은 수프의 부드러움이 ‘레몬그래스호퍼’의 질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농도를 세밀하게 맞춰나갔다. 화이트 카카오와 크림은 코코넛밀크와 리코타로 이어지고, 민트와 레몬그라스의 시원한 허브 향은 완두콩의 싱그러움을 끌어올린다. 크리미하되 무겁지 않게, 첫 디저트의 경쾌한 산미를 그대로 살린 구성이다.

 

PAIRING 02  더덕 × LAPSANG SOUCHONG MARGARITA

 

박지오 셰프의 어머니가 어릴 적 더덕, 우유, 꿀을 섞어 만들어 주시던 주스를 새롭게 디저트로 만들었다. 더덕을 오븐에 잠시 구워 쓴맛을 날리고, 손으로 찢어 훈연 간장, 블루 치즈와 위스키의 풍미를 더했다. 더덕 특유의 흙내음에 홀스레디시로 포인트를 주고, 마스카포네와 크림치즈, 요거트를 사용한 더덕 무스로 텍스처의 대비를 쌓았다.

 

잔에 칵테일을 따르고 있는 손석호 바텐더

이에 맞추어 설계된 페어링은 훈연 향을 지닌 랍상소우총 차를 사용해 마가리타를 스모키하게 재해석했다. 테킬라의 식물성 풍미와 랍상소우총의 훈연 향이 더덕의 흙내음, 피트 위스키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다. 라임과 그랑 마니에르는 치즈와 무스의 묵직한 질감을 환기한다. 박지오 셰프는 더덕에 세이버리한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손석호 바텐더는 칵테일 잔에 말돈 솔트를 붙여내는 방식으로 이를 풀어냈다.

 

PAIRING 03  두리안커리 × P.X BAMBOO

 

이 디저트는 커리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요리사와 파티시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유지방과 바두반 커리의 상성을 먼저 떠올렸고, 향신료를 받아 낼 과일을 찾다 두리안에 닿았다. 의외로 박지오 셰프는 아직 동남아시아를 방문한 적이 없다. 재현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맛으로 재료를 다루는 태도가 오히려 과감한 시각을 만들었다.

코코넛밀크와 유제품, 연유로 만든 모찌리도후에 두리안과 망고, 커리, 코리앤더, 레몬그라스를 사용한 크림을 더했다. 두리안의 농밀한 향과 커리의 향신료, 망고와 연유의 단맛이 중첩되지만, 곁들인 패션푸르트의 선명한 산미와 카피르 라임 잎 오일의 향이 전체적인 인상을 가볍게 정리한다.

 

메뉴를 준비 중인 박지오 셰프와 손석호 바텐더

여기에 셰리와 드라이 베르무트를 중심으로 하는 클래식인 뱀부(Bamboo)에 농축된 단맛을 지닌 페드로 히메네스(P.X) 셰리로 트위스트를 주었다. 강한 풍미의 디저트에 밀리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맛을 부드럽게 감싸도록 설계한 칵테일이다. P.X 셰리의 건과일과 캐러멜 풍미가 두리안과 망고의 농밀함을 이어받고, 드라이 베르무트와 아로마틱 비터가 커리와 허브의 복합적인 향을 정돈한다.

 

PAIRING 04  바닐라 캐비아 × LOBSTER BOULEVARDIER

 

시작은 색이었다. 모든 것이 검은 디저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그 중심에 캐비아를 두었다. 중간을 깨는 순간 흰 크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조가 이 디저트의 반전이다. 맛의 축은 박지오 셰프가 오래 좋아해 온 뱅존 와인에서 나왔다. 뱅존과 콩테 치즈의 연결점을 먼저 떠올렸고, 화사하면서도 너티함이 있는 타히티 바닐라로 배경을 채웠다. 바닐라와 화이트 초콜릿의 단맛에 콩테 치즈와 캐비아의 염도, 호지차의 구수한 향, 뱅존의 산화 숙성 풍미가 겹쳐진다. 단맛과 짠맛의 단순한 대비를 넘어서 치즈와 와인에서 오는 숙성과 발효의 풍미를 중심에 두어 구상해 내었다.

 

마지막으로 캐비아를 올리고 있는 박지오 셰프

칵테일은 버번과 캄파리, 스위트 베르무트를 쓰는 클래식 불바디에에 샴페인과 랍스터 오일을 더했다. 풀보디한 질감이 콩테 치즈와 화이트 초콜릿의 무게감을 받쳐 주고, 랍스터 오일은 캐비아의 바다 풍미와 조화롭게 이어진다. 캐비아와 샴페인, 갑각류라는 프렌치 다이닝의 익숙한 조합을 디저트와 칵테일이라는 형태로 재해석했다.

 

PAIRING 05  똠얌 × AWAMORI VESPER MARTINI

 

출발점은 어느 자리에서 인상 깊게 먹은 똠얌꿍의 산도였다. 박지오 셰프는 똠얌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나열한 뒤 남길 것과 덜어 낼 것을 골랐다. 예를 들면, 피시소스가 맡던 감칠맛의 자리를 우메보시로 바꿔내어, 산미와 감칠맛, 염도를 미세하게 얹는 방식이다. 똠얌 자체에 산도가 충분해, 복숭아 콩포트에는 플로럴한 아로마는 더하되 산도가 낮은 비오니에를 골라 밸런스를 지켰다.

그렇게 완성된 접시에는 동남아 요리의 기본 향을 만드는 뿌리 향신료인 갈랑갈과 레몬그라스, 고수, 라임을 사용한 똠얌 소르베에 크렘 프레슈 폼과 엘더플라워 젤리, 비오니에 와인으로 조리한 복숭아 콩포트가 어우러진다. 향신료와 산미를 차갑고 가벼운 소르베로 풀어내고, 복숭아와 엘더플라워의 향긋한 단맛으로 균형을 맞췄다.

 

한 끼의 식사에서부터 시작된 ‘똠얌’ 디저트

칵테일은 아와모리와 오키나와 진을 중심으로 클래식 베스퍼 마티니를 재해석했다. 오키나와의 여름을 연상시키는 증류주의 풍미와 시트러스 향이 똠얌 소르베의 열대적인 인상과 이어진다. 드라이하고 선명한 마티니의 구조가 복숭아 콩포트와 엘더플라워 젤리의 단맛을 정리하고, 깨끗한 바다의 여운을 남긴다.

 

PAIRING 06  크루아상오뎅 × IWA SAKE

 

감자와 가쓰오부시, 다시마로 얼큰하고 깊은 국물을 낸 후, 키리모찌를 감싼 크루아상을 담가 국물을 충분히 머금게 한 뒤, 일본 로컬 시장에서 직접 사 온 시치미와 산쇼를 뿌려 마무리한다. 바삭하던 크루아상의 결은 유바에 가깝게 변하고, 쫀득한 떡과 국물의 얼큰함이 버터 향과 겹친다. 모티프는 창원의 물떡. 오뎅 포차에서 국물에 잠겨 있던 그 떡의 질감을 디저트로 옮겨 오고 싶었다고 한다. 앞선 다섯 가지 메뉴와 달리 이 메뉴는 당과 산미보다 따뜻한 온도와 짠맛, 감칠맛을 중심에 둔다. 디저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따스함이, 마지막 자리에 놓이며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는 칵테일 대신 IWA 사케를 매칭했다. IWA 사케의 부드러운 질감과 쌀에서 오는 은은한 단맛이 크루아상과 키리모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깨끗한 산미와 여운이 따뜻한 국물의 감칠맛을 극대화하며, 코스를 마무리한다.

 

디저트와 칵테일이 함께 그리는 새로운 챕터

여섯 가지의 디저트와 다섯 잔의 칵테일, 그리고 한 병의 사케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디저트라는 형식의 폭에 대한 감각이다. 채소와 뿌리에서 출발해 향신료와 발효를 지나 따뜻한 국물에 닿는 동안, 디저트 코스는 단순히 단맛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다시 정의된다.

 

서비스를 앞두고 준비 중인 김현영 디렉터, 손석호 바텐더, 박지오 셰프, 김동한 매니저

박지오 셰프에게는 오래 품어 온 생각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디저트에도 서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개성이 될 때 가장 큰 힘을 갖는다는 것. 설득이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번 여섯 가지 메뉴는 그 흐름을 설계해 온 과정에 놓인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유행을 좇기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쪽을 택해 온 손석호 바텐더의 시간도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해 있었다. 완두콩과 더덕, 두리안처럼 바에서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 재료에 칵테일을 맞추는 일, 그러면서도 디저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중간중간 재치 있는 순간을 남기는 일. 클래식이라는 기준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확인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셰프와, 그 이야기가 가장 잘 전해지도록 칵테일을 설계하는 바텐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쌓아 온 두 사람의 시간이 한 코스 안에서 맞물린 순간이었다.

단락

Writer 최진우 (Jinu Choi)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Jinu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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