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제작 기물의 의미는 ‘그릇’이라는 쓰임을 넘어 레스토랑 브랜드의 차별화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창의적 연결이 된다.
한국의 셰프들이 도예가, 공예가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흐름은 국제 브랜드의 외식 영역으로도 번져갔다. 2025년 9월 정식으로 문을 연 서울 청담동 LV Café가 바로 그 사례다. 이곳은 여러 한국 도예가와 협업해 레스토랑을 위한 기물들을 맞춤 제작했다. 자연 유약이 특징적인 도자기 브랜드 OBWARE를 창립한 이지호 도예가, 다양한 작가를 큐레이션하는 소일베이커의 상주 작가인 고수진, 필동도예공방 창립자 이혜미, 목공예 장인 정재훈, 현대 도예가 오선주 등이 참여했다.
이 작가들의 작품은 각기 특징이 다르다. 이지호는 자연 유약과 도자 기물을 다루는 데 능하며, 고수진의 작품은 흙의 온기와 자연스러운 질감을 그대로 간직한다. 이혜미는 섬세한 유약 실험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도자기에 반복적으로 유약을 바르고 은박을 입힌 뒤 연마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은채’의 독창적인 광택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오선주의 작품은 서로 다른 흙과 안료를 결합하고, 복잡한 연마 기법을 통해 도자기 표면에 흙 본연의 입자감을 남기면서도 비단처럼 매끄러운 촉감을 부여한다. 정재훈은 한국의 국가 지정 중요무형유산 전승자이자 복원 전문가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통 목가구, 목창호, 목기 제작에 집중해왔다. 정재훈은 LV Café를 위해 제작한 꽃 모양의 목함에 조선 전통 목공예의 미학과 짜맞춤 기법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 식기 시리즈는 LV Café의 전체 테이블웨어에 한국적 미학과 동양적 선의 문화적 기운을 불어넣었다. 절제되고 간결하며 조용한 방식으로, 브랜드가 지닌 ‘로고 중심’의 상업적 분위기를 균형 있게 누그러뜨렸다.
서울 청담동 LV Café의 네잎클로버 목함(왼쪽)은 국보급 목공예 장인 정재훈이 제작한 것으로, 조선의 목공예 미학과 짜맞춤 기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오선주의 도자 컵(가운데)에는 브랜드의 로고가 낮은 톤으로 새겨져 있어 간결하면서도 대범하다. ‘에그컵’(오른쪽)은 이지호의 작품이다 (사진 Agnes Chee)
기물, 셰프의 개성으로 확장되다
솔트커뮤니케이션즈 송자인 대표는 최근 한국 셰프와 고급 레스토랑이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식기와 기물을 맞춤 제작하는 이유가 주로 브랜드 구축과 브랜드 차별화에 있다고 본다.
“한국의 고급 레스토랑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면서, 셰프는 더 많은 것들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개인 인물을 넘어, 독자적인 시각 이미지와 콘셉트를 가진 브랜드처럼 작용하죠. 이런 의미에서 식기는 음식을 담는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셰프의 개성을 유추할 수 있는 상징이며, 손님이 첫 한입을 맛보기 전부터 레스토랑의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한국 공예의 변화와도 절묘하게 맞물리는데, 많은 현대 한국 공예가들은 더 이상 갤러리 전시에만 머물지 않고, 도자기와 칠기, 금속 공예품 등의 작품을 일상의 제품으로 선보입니다. 레스토랑은 그 교차점이 된 셈이에요. 셰프들은 더 강력한 브랜드 언어를 찾고 있고, 공예가들은 현대적인 실용 방식이나 형식을 통해 한국 미학을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한국의 셰프들과 현대적인 공예 작가들이 만나는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서로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정윤(Julia Lee) 미식 저널리스트는 요리를 위해 맞춤 제작한 식기는 오래전부터 국제적인 흐름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의 많은 최고급 레스토랑은 지역의 도예가나 공예가, 혹은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사실 이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흐름이 지금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량 생산된 식기를 구입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 셰프들이 어떻게 해야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가 하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답은 점점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창조적 생태계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Atomix)는 이미 2018년 개업 당시부터 이러한 방식을 적극 수용했다. 아토믹스는 ‘ㄷ’자 형태의 셰프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으로, 뉴욕에서 선구적으로 컨템퍼러리 코리안 퀴진을 선보였다. 또한 네 명의 한국 작가와 함께 제작한 일련의 식기는 상업성과 예술성이 공존하는 다문화 도시 뉴욕에서 아토믹스만의 뚜렷한 정체성과 충만한 정신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되었다.
아토믹스를 위해 식기를 제작한 작가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조은샘 도예가는 상징적인 ‘구슬 사슬’ 손잡이 컵과 입체적인 구슬 장식 도자 접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김남희 도예가는 독창적으로 배합한 유약을 사용한 손물레 도자기를 통해 인간적인 온기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한편, 흙빛과 대지의 질감을 도자 작품에 녹여내는 데 뛰어난 신재일 작가는 자연스럽고 유려한 선을 지닌 기물을 통해 요리의 미학에 리듬감을 더했다.\
유리공예가 이정원의 유리 접시(왼쪽)는 뉴욕 Atomix의 식탁을 구성하는 기물 가운데 하나다. 몇 해 전에는 현대 도예가 윤상현의 작품(오른쪽) 역시 Atomix에서 사용된 바 있다. 윤상현이 개발한 결정유(코발트와 구리 화합물을 배합한 유약)는 도자기의 색감을 맑고 부드럽게 표현하며, 요리를 더욱 따뜻한 분위기로 돋보이게 한다. (사진 Agnes Chee)
아토믹스의 박정현 오너셰프는 개성이 뚜렷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특히 선호한다. ‘가시’와 ‘입체 별무늬’ 시리즈 도자기로 잘 알려진 권은영 작가 역시 그의 협업 대상이다. 오늘날 한국 셰프와 테이블 예술가들의 협업에 대해 박정현 셰프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많은 문화 운동이 하나의 분야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고 봐요. 서로 다른 창조적 영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며, 결국 한 세대의 정신을 함께 만들어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대략 1980년대부터 21세기 초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전례 없는 규모로 세계 문화를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긴밀한 연결을 유지한 첫 세대였어요. 지금 우리가 한국 요리에서 목격하는 변화는 영화, 예술, 음악, 패션, 건축,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 유사한 발전의 결과입니다. 이 세대는 한류 문화의 세계적 성장을 이끌었고, 이제 우리는 한국 미식이 나아갈 창조적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박정현 셰프는, 지금 한국은 창의성이 만개하는 시대에 있기에, 셰프들은 더 이상 형식이나 기존의 틀에 머물러 자신의 요리 철학을 표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이전과 다른 우리 세대의 중요한 차이는, 지금 셰프들은 모든 분야의 뛰어난 ‘크리에이터 생태계’ 안에 있다는 점이에요. 레스토랑을 열 때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일할 뿐 아니라, 가구 제작자, 도예가, 그래픽 디자이너, 브랜드 전문가, 사진가, 공예가들과도 협업할 수 있죠.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고, 협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모두가 같은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문이에요.”
박정현 셰프는 오늘날 한국의 셰프들이 뛰어난 창의적 인재들로 이루어진 생태계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형식이나 기존의 틀에 머물러 자신의 요리 철학을 표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표작인 ‘가시’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젊은 도예가 권은영(오른쪽) 역시 아토믹스와 협업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진 Agnes Chee, 권은영)
더욱 완전한 문화적 서사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박정현 셰프는 지금의 한국 셰프들이 다양한 분야의 공예가, 예술가와 협업해 레스토랑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는 현상이 단순히 미학적인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일관된 경험을 구축하려는 보다 폭넓은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셰프들의 관심은 요리 자체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식기와 가구, 조명, 음악, 시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와 경험으로 녹여낼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독특한 스타일과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서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오너 셰프 강민구는 셰프와 예술가들의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과 충돌은 전통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탐구라고 말한다. (사진 Mingles)
서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오너 셰프 또한 이렇게 말한다. “젊은 세대의 한국 예술가들은 전통의 기반을 존중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며, 표현 방식과 문양을 재구성함으로써 기존의 표현 방식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성의 ‘경계 넘기’는 요리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셰프들의 태도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의 흔적과 시야를 공유하는 예술가와 셰프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만나고, 창작의 교류 속에서 함께 발전합니다. 이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충돌은 전통을 다시 해석하는 과정인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