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다이닝 씬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한국식 미학’ 오랫동안 디자인과 미식계를 지배해 온 북유럽식 미니멀리즘을 탈피했다. 이는 아시아인의 감성과 미적 취향에 더욱 가까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약 반년 전 서울을 찾았을 때, 새롭게 이전한 모수 2.0을 방문했다. 음식은 여전히 높은 완성도였는데, 더 인상깊었 부분은 셰프의 미학이 한층 더 정제되고 완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안성재 셰프는 이전하기 전 모수 시절부터 한국의 도예가이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솔 작가와 협업해 모수만을 위한 식기를 제작해 왔다. 간결한 형태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선, 매끄럽고 섬세한 유약의 질감은 모수 대부분의 요리가 지닌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안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방식으로 돋보이게 만들었고, 독창적인 정체성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모수 2.0에서는 두 사람의 협업이 더욱 긴밀해졌다. 식기뿐 아니라 공간 곳곳에 배치된 도자 예술 작품까지 모두 윤솔 작가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식기와 오브제, 인테리어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통일된 미학을 형성했고, 이는 모수의 뛰어나면서도 조화로운 공간적 아름다움을 완성해냈다.
안성재 셰프는 모수 1.0 시절(오른쪽)부터 한국의 저명한 도예가 윤솔과 긴밀한 협업을 이어왔다. 모수 2.0(왼쪽)에 이르러서는 식기 제작뿐 아니라 실내 장식에도 윤솔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각적 조화와 일관된 미학을 구현했다. (ⓒsolyoon_ceramics)
요리와 식기,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
안성재 셰프는 약 1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서울에서 모수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든든한 자본력을 갖춘 CJ그룹의 지원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셰프는 자신이 구상한 많은 부분을 실현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도예가와 협업해 요리를 위해 맞춤 제작한 식기를 만드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요리의 특징과 형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프랑스산 도자기를 구입한 뒤, 일부 전통 한국 식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선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수의 선택은 이와 차별화되는 지점에 위치했다. 레스토랑이 문을 연 이후 윤솔 작가의 작품은 모수의 요리와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를 형성하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침 그 시기는 한국 대중문화가 2010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한국 미술계 역시 함께 성장하던 시기였다. 한국은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고, 현대미술 시장 또한 크게 발전했다. 그 흐름 속에서 도예가와 자기(瓷器) 장인들 역시 이전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안성재는 맞춤 제작 식기에 대해 남다른 감각과 높은 기준, 그리고 강한 집념을 갖고 있다. "식기는 요리를 담는 기능을 넘어 오히려 제 요리와 철학을 발전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어떤 요리에 어떤 식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된 답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때로는 도예가와 함께 논의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부 요리와 식기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서로를 상호 완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안성재는 또한 오늘날 한국의 하이엔드 다이닝 업계에서 맞춤형 식기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 역시 보다 안정적인 품질로 생산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윤솔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조형미, 그리고 매끄럽고 섬세한 질감의 도예 작품은 모수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완성했다. 강렬한 개성과 시각적 미학은 곧 브랜드의 예술성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사진 제공: 모수
안성재는 윤솔 작가의 작품 뿐 아니라 모수 2.0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도 함께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파편 예술가(Fragment Artist)' 이택수의 '재생(Rebirth)' 시리즈 찻잔은 중국 경덕진에서 수집한 명·청 시대 청화백자 파편을 바닥 부분에 사용하고, 현대 백자를 결합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모든 찻잔이 단 하나뿐인 고유한 작품으로, 모수의 요리를 더욱 품격 있게 완성한다. (ⓒAgnes Chee)
유럽과 미국의 유명 셰프들이 예술가나 장인, 혹은 브랜드와 협업해 자신만의 식기를 제작하는 일은 비교적 보편적인 문화다. 모든 스타 레스토랑이 반드시 베르나르도나 크리스토플, 마이센 같은 유명 브랜드의 식기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채소의 신'이라 불리는 알랭 파사르(Alain Passard)다. 그는 프랑스의 현대 아트 테이블웨어 브랜드 Maison Fragile과 협업해 자신의 종이 콜라주 작품을 도자기에 담은 식기 시리즈를 제작했고, 여기에 'Dame Nature(자연의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식기는 그의 요리 철학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하나의 통일된 세계관을 형성한다.
'Dame Nature' 시리즈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이는 알랭 파사르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움직이는 브랜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레스토랑에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역할도 한다. 상업적인 시도이지만, 예술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알랭 파사르가 팬데믹 기간 동안 자신의 레스토랑 아르페주(Arpège)를 리노베이션하면서 자수 예술가 나디아 알베르티니(Nadia Albertini)와 디자이너 카트린 소퍼스(Katrien Soeffers)를 초청해 약 40㎡ 규모의 대형 벽면 자수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자연을 실내로 옮겨온 듯한 이 작품은 최고 수준의 자수 기법으로 완성됐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채소와 꽃, 그리고 날갯짓하는 벌과 나비까지 모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셰프의 요리와 식기, 그리고 공간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이와 같은 시도는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을 통해 손님에게 음식을 넘어 문화적 영감과 감동을 전하며 미식 문화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정상급 셰프가 갖추어야 할 소양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새로운 한국식 미학이 레스토랑에서 구현되는 방식
오늘날 한국의 현대 레스토랑 셰프들은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다양한 작가와 협업한다. 기성품 식기에 자신의 요리를 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함께 작업하는 예술가와 장인에 대해 물으면 누구나 자신의 철학과 협업 과정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각 셰프들의 개별적인 시도가 하나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발전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이 현상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례는 일본 가이세키 요리일 것이다. 가이세키에서는 식기의 재질 자체가 미적 표현일 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전달하는 언어가 된다. 도자기, 자기, 유리, 칠기뿐 아니라 색채와 장식, 그리고 서로의 조화까지 모두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가이세키는 코스 수가 많지만 『십해 일본요리(十解日本料理)』에서는 같은 메뉴 안에서 동일한 종류의 식기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회를 이가야키(伊賀燒)에 담았다면, 다른 요리에는 다시 이가야키를 사용할 수 없다." 대만 『alive』에 언급된 것처럼, 가이세키의 전체적인 구성을 통해 우리는 일본인 특유의 엄격함과 극한의 완성도를 향한 집요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축적이 오늘날 일본 요리와 일본 식문화를 세계적인 문화적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 무대는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밍글스, 정식당, 모수 등 모던 한식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은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타닉 가든, 솔밤, 기와강과 같은 차세대 레스토랑에서도 저마다의 독창적인 테이블 미학과 요리, 그리고 공예품이 함께 공생하는 관계는 익숙한 풍경이다.
현재 한국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셰프 가운데 한 명인 손종원 셰프가 이끄는 이타닉 가든은 기물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다. 아뮤즈 부슈는 기본적인 구성은 유지하되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이를 담아내는 세 가지 기물은 도예가 이혁의 작품이다.
이타닉 가든의 헤드셰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손종원 셰프는 여러 도예가와 공예가의 작품을 엄선해 자신의 현대 한국 요리를 표현한다. 이혁, 김희종, 나기환 작가의 작품 등 다양한 당대 예술성을 담아낸 현대적인 도예 식기는 이타닉 가든의 시각적 예술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타닉 가든의 대표적인 캐비아 요리는 발효 숙주, 구운 멸치, 킹크랩, 관자, 캐비아 등 다채로운 요소를 층층이 쌓아 올린 요리로, 김희종의 대표작인 '백자합'에 담겨 한층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또한 전통 공예 명장 안유태가 맞춤 제작한 '디저트 자개함’은 전통 나전칠기 기법을 현대적인 형태로 재해석해 맞춤 제작한 작품이다.
디저트에서는 또 다른 선택을 했다. 손종원 셰프는 한국의 전통 나전칠기를 이어 온 안유태 명장과 협업해 전통 자개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맞춤 제작 기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디저트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솔밤에서 사용하는 도농도예 인현식 작가의 '솔방울 합'
한편, 솔밤을 방문하는 이들은 엄태준 오너셰프가 얼마나 디테일에 집착하는 인물인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셰프가 일반적인 기성 식기에 만족했을 리 없다. 그는 한국의 저명한 도예가 인현식이 이끄는 브랜드 도농도예와 작업해 아름다운 은 솔방울 장식이 달린 도자합을 사용한다. 그 외에도 각각의 요리에 맞춘 세밀한 맞춤 제작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솔밤 엄태준 오너셰프의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와 세밀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레스토랑 곳곳에 사용된 맞춤 제작 식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요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식기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솔밤이 제작한 기물들은 각 요리의 특성에 맞추어 식기의 크기와 형태, 가장자리의 두께, 유약의 색감까지 세심하게 조정됐다. 식기의 높이부터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촉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수정 작업을 거듭하며, 솔밤이 추구하는 '신고전주의 한국 요리'의 현대적인 미학과 온도를 음식 뿐 아니라 기물에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였다.
도예 명장 신경균 작가와 강민철 셰프가 기와강에서 함께 선보인 콜라보레이션
강민철 셰프의 기와강에서는 신경균 작가의 도자기와 대를 이어 한국적인 미감을 추구하고 있는 신현민 작가의 작품을 폭넓게 사용한다
새롭게 1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강민철 셰프의 기와강도 주목할 만하다. 강 셰프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 명장 신경균과 함께 요리와 도예가 만나는 아름다움을 꾸준히 탐구하며, 신경균 작가, 기순도 명인과 함께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콜라보레이션 디너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당시 웰컴 샴페인은 신경균 작가가 장작가마로 구운 전통적인 다완에 제공되어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이 연출은 전통 공예와 현대 미식을 연결하는 깊은 대화의 시작이 되었고, 당시 미식계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기와강의 강민철 오너셰프는 어머니와 누나가 모두 화가인 환경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시각적 미감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과 철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한 차례 저명한 도예가 신경균의 장작가마 다완을 샴페인 잔 대신 사용해 손님을 맞이하며, 전통 공예와 미식의 깊은 대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현대 한국 요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한국식 미학은 수년간 시각적 트렌드를 지배해 온 북유럽식 미니멀리즘을 극복하며 아시아인의 미적 감각을 더욱 독창적으로 선보인다. 여러 레스토랑의 사례처럼, 현대 한국 요리는 '전통과 현대의 시적인 공생'에 기반한다. 프랑스 요리의 기술로 전통을 해체하는 동시에, 한국 고유의 발효 문화와 제철 풍토를 깊이 탐구하며, 극도의 여백과 한국만의 색감, 그리고 현대적인 산업적 질감이 서로 충돌하는 독창적인 시각적·미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또한 공간과 기물은 전통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특징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소재의 충돌과 융합
현대 한국 레스토랑은 목재, 도자기, 한지와 같은 자연스러운 소재를 즐겨 사용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리스나 황동과 같은 현대 산업 소재를 절묘하게 결합한다.
② 여백을 살린 공간 구성
전통 한옥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은 종종 서로 엇갈리도록 배치된 구성을 채택해 답답함을 해소한다. 여기에 빛을 투과시키는 스크린이나 식물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사적인 분위기와 개방감을 동시에 갖춘 동양적인 선(禪)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③ 기물에 담긴 비정형의 미학
화려하게 장식된 기성 식기 대신, 불규칙한 형태의 수공예 도자기와 거친 질감의 토기, 황동 식기를 선택한다. 기물에는 물레 성형의 흔적이나 자연 소성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불완전함을 그대로 남겨두는데, 이러한 비정형적 미학은 음식을 가장 중요한 시각적 중심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며 한국식 미학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