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알라 프리마의 김진혁 셰프는 가장 신선한 재료를 중심으로 ‘지금’의 미식을 써내려 가고 있다.
당대의 미식은 어디까지 온 것일까. 화려한 쇼 비즈니스인가. 아니면 만들고 먹는 전통적인 생산의 영역인가. 그 질문을 김진혁 셰프에게 묻고자 했다. 알라 프리마의 오후. 난숙한 봄이 한창이었고 조용한 주택가 반지하층의 문이 열렸다. 막 점심을 마친 객들이 하나둘 빠져나왔다. 고급 호텔의 비즈니스 라운지처럼 보이는 객장이 특이했다. 금세라도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낼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는 너른 개방형 부엌에서 등을 돌리고 촬영할 요리를 점검했다.
알라 프리마의 내부는 짙은 호두나무의 색을 중심으로, 편안하게 디시에만 빠져들 수 있는 공간적 경험을 준다.
이 하이테크의 시대에도 요리란, 식당이란 여전히 재래식이다. 재료를 다듬고 불을 지피고 굽고 볶는다. 그런 고전적인 관점을 부수려고 했던 페란 아드리아도 결국은 손을 들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어서 문을 닫겠소.” 그의 폐업의 변이였다. 바텔과 카렘과 에스코피에도 모두 오븐에서 굽고 스토브에서 육수를 끓였다. 오랜 절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요리라는 숙명. 하지만 내부적으로 조용한 변혁이 있었다.
현대의 요리사들은 예를 들자면, 볶음의 기초인 미르푸아의 비율을 바꾸고, 아니 미르푸아를 만들지 않고도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걸 보여주고 있다. 그게 현대의 미식이다. 그 자리가 오늘은 알라 프리마다. 생산하면서 연출한다. 손님들은 이 두 가지를 다 이 식당에서 느껴보길 원하며 비싼 돈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괜찮은 선택이다. 어두운 호두나무색과 단풍나무색이 배색된, 이 공간에서 말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기대감과 긴장감, 그 사이의 셰프 김진혁
김진혁 셰프는 계절마다 ‘알라 프리마’라는 장르를 새롭게 정의하고, 때로는 파괴하며 나아간다.
“인터뷰는 늘 괴롭죠. 많이 해보지 않았어요.”
셰프 윤화영이 묻고 답한 <메티즌>의 인터뷰가 좋았다고 하자 그의 대답이었다. 오기 전에 그의 인터뷰 이력을 찾아보았지만 아주 드물었다. 하기야 미식 최전선의 셰프들은 요즘 인터뷰를 꺼린다. 연예인과 셰프들의 경계가 흐릿해진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니에요. 우린 얼음물에 손을 넣어요. 칼에 베이고 오븐에 화상을 입죠. 앞에서 웃고 뒤에서는 생선 내장을 긁어냅니다.”
쇼는 먹지 못하지만 요리는 입에 넣는다. 영양가도 줘야 한다. 쇼와 요리의 공통점도 있다. 혹평은 그 주인공들을 나락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 재룟값 오 백원을 깎는다. 재료 하나 살 때 말이다. 가만 있자, 광어가 킬로당 몇 백원 오르면 세프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게 현실이다.
일본에서 새롭게 쌓아 올린 일식의 경험이 지금의 그와 그의 요리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젓가락을 써서 음식을 옮기고 접시에 담는다.
일식 요리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시아 요리사들의 장점이죠. 손가락은 열 개이고, 우리는 그 세밀한 근육을 움직여서 접시를 채웁니다.”그는 일찍이 일본에서 수련했다. 유명한 제빵 집안에서 자랐는데 우연히 일본 요리를 서울에서 배웠다. 더 잘하기 위해 건너갔다. 그의 음식에 일식의 아니마(Anima: 영혼)이 깃들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같다. 다른 질문부터 던졌다.
트위저가 아닌 젓가락을 사용한 플레이팅은 장르 사이의 균형감과 조화로 굳건하게 서 있는 알라프리마를 상징한다.
<흑백요리사> 제안이 있었다고요.
(그는 ‘이제는 말해도 되겠죠’하며 시원시원하게 뒷얘기를 꺼냈다.)
“접촉이 있었죠. 기획 단계에서 심사위원 후보로요. 서너 명이 후보였을 거예요. 어떤 작가가 저한테 "거의 된다"는 식으로 먼저 말해버렸어요. 결국 안 됐다는 통보가 왔고, 그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접고 잊은 일이었는데. 나중에 ‘선수’로 뛰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한다.
“애초에 직접 요리를 하는 배역이었다면 시즌2에서는 했을지도 몰라요. 흥미로운 것이니까.”
그는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일본에 가서 깊고 넓은 수련을 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일식은 깡그리 잊어야 했다. 제대로 한 번 붙었다. 그때 배운 게 지금의 김진혁을 만들었다.
큰 창을 통해 빛을 받는 알라 프리마의 바 테이블에서는 디시의 처음과 끝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
어쩌다가 알라 프리마까지 오게 되었나요. 귀국하고 한참 후 2015년 창업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서른 두 살이었는데 통장 잔고가 3만 원이었어요. 마침 여러 요리 브랜드를 론칭하던 SPC에 특별 채용으로 들어가서 돈을 모았죠. SPC에서는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뭐랄까, 순진해서 책임 다 뒤집어쓰는 것 같은 거죠. 알라 프리마 오픈하기 전까지 7,8년이 계속 방황이었어요. 이상과 꿈은 있는데 현실이 그걸 도저히 받쳐주지 않으니까 좌절하는 느낌으로 살았죠.”
별의 시대의 개막, 그리고 알라 프리마라는 시작점
우리가 알다시피, 그의 인생에 대전기가 생긴다. 미쉐린가이드의 한국 진출이었다. 이런 후일담은 이제는 부담을 덜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된 듯하다.
“2015년 7월에 오픈했는데, 그해 12월에 지인을 통해 인스펙터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때 알라 프리마 세팅이 워낙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나마 번 돈 몇 천만 원을 털어서 접시랑 기물을 싹 바꿨죠. 요리도 재정비했어요. 당시 유명세를 얻고 있던 젊은 셰프들 음식하고 전혀 겹치지 않게끔 고민했어요. 한국에 없는 느낌으로 말이죠. 아무래도 일본에서 일식으로 시작했다 보니 일본인의 시각으로 다른 장르의 요리를 보는 법이 저도 모르게 배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차별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알라 프리마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미쉐린 1스타를, 2019년부터 지금까지 2스타를 유지 중이다.
알라 프리마의 그 독창적인 요리들, 세련되면서도 엄격하고 직관적이면서도 깊은 메뉴의 창안은 그렇게 생겨났다. 세상의 모든 요리사들은 제각기 수련한다. 다른 세계로 자신을 끌고 가는 건 요리사의 몫이다. 반복된 엄중한 연습, 실패지점을 겪지 않는 운동이 발전이 없는 것처럼. 러너스 하이가 올 때까지 고점을 넘는 훈련 같은. 그에게서는 그런 불꽃이 보인다. 눈빛에서, 동작에서.
이탈리아어로 ‘즉흥적으로’, ‘처음 시도하는’이라는 뜻의 Alla Prima는 곧 김진혁 셰프의 창작관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알라프리마의 장르를 어떻게 규정하시나요. 상호는 이탈리아어죠. 사전적으로는 회화에서 단번에(Prima) 즉흥적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생동감을 의미하죠. 김셰프의 요리에서는 그런 느낌과 함께 일본적인 정치(精緻)한 여백과 선이 있어요.
“저는 단 한 번도 '재패니스 이탈리안'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요. 미쉐린 첫 해에 미쉐린 가이드 측에서 장르를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겠다고 했죠. 일본의 비슷한 포지션 레스토랑이 이노베이티브로 분류된다고 했더니 미쉐린 가이드 측도 동의해서 그렇게 등재됐어요. 그 이후로는 항상 ‘무국적 요리’, ‘알라프리마의 요리’라고 말합니다.”
이노베이티브나 재패니즈 이탤리언 등이라는 정의가 있음에도, 알라 프리마의 요리는 여전히 재료를 중심으로 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요리를 보니, 큰 카테고리에서는 이탤리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매우 다행이에요. 가끔 제가 제 요리를 봐도 너무 일식 같을 때가 있거든요.”
한 장르에 규정되는 게 불편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교토의 미쉐린 3스타 <효테이>를 다들 아실 것이다. 3스타이기 전에, 이미 효테이는 일본의 식당의 한 전범이었다. 대를 이어받을 때 일본의 유력 매스컴들이 모여 공동 인터뷰를 할 정도다.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셰프는 흔히 “열심히 해서 효테이를 혁신하겠다”고 말할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는 반대다. 2015년, 15대 셰프 타카하시 요시히로는 “천천히 스며들 듯 전통을 지키면서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그 의식은 물론 훌륭하지만, 김진혁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일필휘지, 부수듯 짓고 세운다. 그게 알라 프리마일지도 모른다.
아늑함 속에 미묘한 긴장감과 우아함이 감도는 알라 프리마의 인테리어.
무질서 안의 질서, 단 한번의 붓질로 정의하는 장르
일본 인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SPC 시절 모신 요네무라 셰프의 수셰프와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동갑내기였는데 서울에서 같이 메뉴 만들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졌죠. 그 친구 소개로 교토 'Cenci(첸치)'의 사카모토 셰프를 알게 됐어요. 첸치는 간사이 재패니스 이탈리아의 시작점 같은 곳이에요. 원래 오픈 멤버로 합류하려 했는데 그때는 비자가 쉽게 안 나왔어요. 어쨌든 사카모토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 시절 교사이(京菜)로 만드는 이탤리언에 엄청 빠져들었어요. 재료를 생각하는 법,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 그게 알라 프리마의 원점이 됐습니다.”
사카모토 켄은 1975년생으로,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일본의 이탤리언의 큰 별인 도쿄 일 기오토네의 수셰프로 활약하다가 첸치를 연 인물이다.
요네무라 셰프에게서 많이 배우셨나요.
“그 분이 일본의 유명한 창작 요리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사람이에요. "나는 일식 요리사가 아니라 교토의 요리사이기 때문에 하모로 음식을 만든다"고 할 정도로 교토인 특유의 자부심이 있었죠. 그 영향으로 저도 갯장어를 철에는 꼭 씁니다.”
김진혁 셰프는 일본에서 알라 프리마의 원점이 되는,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 요리’의 기반을 다졌다.
본인의 플레이팅 철학이 있다면.
“무질서 안에서의 질서를 좋아해요. 만다라를 그리다가 하나가 툭 빠진 느낌. 재료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하나 더 놓고 싶은 욕망을 딱 끊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더 얹는 게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비우는 게 멋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탈리아 요리와 일본 요리 모두 그 절제와 닮아 있어요. 보여주려 한다기보다 그냥 놓여 있는 거예요.”
포를 떠서 모양을 낸 신선한 활전복의 윤기가 시각적으로 먼저 와닿는 전복과 토란 튀김 디시
재료는 어떻게 구하세요.
“구하러 다니진 않고 서칭을 해요. 연락하고 전화하고. 없는 재료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는 둥굴레 순을 구해 쓴다. 원래 한국에서는 시장에 없는 재료다. 둥굴레 재배 농장에 접촉, 순을 팔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대구 이리도 일본엔 따로 파는데 한국엔 없어서 부산 업자를 설득해 만들어냈고요.”
한국의 요리사들의 고통은 재료의 다양성 문제에서 비롯한다. 요리사들이 각자도생하듯,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바삭하게 조리한 찹쌀 위로 관자, 트러플, 한련화를 쌓아 올린 리조또 디시
생선은 어떻습니까.
“오픈 초반에는 싸고 물건도 많았는데 요즘은 큰일 난 거 아닌가 싶어요. (셰프들이 좋아하는)금태는 업자들이 ‘멸종한 것 같아요’라고 할 정도고요. 무늬오징어도 쓰고 있고, 요즘 제일 빠져든 건 점다랑어예요. 제주도 업자가 ‘이거 쓰실래요?’ 하고 보내줬는데, 뱃살이 엄청 달고 부드러워요. 정말 얼마 안 하던 게 이제 고급이 됐어요. 비싸요. 삼치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라고 생각해서 금어기 빼고는 거의 연중 씁니다.”
그는 은어를 즐겨 쓴다고 했다. 양식 셰프들에게는 그동안 사실상 관심 밖의 생선이었다. 이렇듯, 다채로운 이력과 태도를 가진 셰프들의 등장은 한국 요리계의 외연을 풍성하게 넓힌다. 물론, 구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이지만.
“은어를 제대로 알고 쓰기까지 5,6년 걸렸어요. 좋은 거 보내주는 사람 찾는 데 1년, 연습해보고 손님한테 못 내겠다 싶어서 1년, 다시 시도해서 3년. 철이 지나가버리고 그렇게 3년이 걸리네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수박 향이 살짝 나는데 그 상태는 사실 선도가 떨어진 거예요. 살과 내장을 함께 조리했을 때 단맛과 쌉쌀한 감칠맛의 밸런스, 그게 이 생선의 매력이에요.”
요리 이야기의 심부로 그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얼굴이 밝아진다. 인터뷰를 한다는 의식도 옅어지는 것 같았다.
파슬리 폼과 초피 오일, 유채 소스를 곁들인 연근과 랑구스틴 디시
발효도 많이 하시죠? 어쩌면 요리의 한 돌파구가 발효가 아닐까 합니다만. 르네 레드제피가 그랬듯이.
“재료가 부족하면 저장하고, 저장이 안 되면 발효해요. 봄 머위꽃을 어간장, 숙성 누룩과 섞어 발효시키면 장도 아니고 누룩도 아닌, 전혀 다른 조미료가 됩니다. 가을에 만든 게 겨울이 되면 또 다른 맛이 돼요. 그 계절성을 손님에게 줄 수 있다는 기쁨이 있죠. 실패도 많아요. 여러 재료의 자투리가 생길 때마다 일단 뭐든 시도해봐요. 소금 절임, 동치미 방식, 누룩이랑 같이 숙성한다던가…. 여러가지를 시도해 봅니다.”
요리 역사를 바꾼 수많은 발명과 발견은 끊임없는 시도와 발상에서 비롯한다. 마치 현대과학이 그랬듯이 말이다. 요리사는 그런 점에서 혁신가이다. 요즘 파인다이닝의 어려움은 와인 매출 저하가 아닐까 싶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고, 그에게 우선 페어링을 물었다. 좋은 식당은 페어링이 좋아야 한다. 같은 음식도 페어링으로 다른 경지를 빚어낼 수 있다. 소믈리에의 몫이라고 하는데, 그 출발은 셰프일 수도 있다.
얇게 썰어 색다른 질감을 낸 죽순과 죽순으로 만든 퓌레를 곁들인 타르트
와인 페어링은 어떻게 하세요.
“크룩 샴페인 앰버서더를 하고 있어서 그랑 큐베와 로제 두 가지로 페어링하는 방식을 좋아해요. 개인적으로는 내추럴 오렌지 와인이 제 요리랑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안 어울리는 식재료가 딱히 없어요. 등 푸른 생선이랑도 오렌지 와인이면 너무 무난하고, 감칠맛이 폭발하면서 풍미를 길게 끌어가 줘요. 소믈리에는 자기가 페어링을 주도할 수 있어야 오래 일해요. 그게 안 되면 (소믈리에가)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금방 떠나게 됩니다.”
음식 간은 세게 잡으시나요.
“세다고들 하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한국인들이 감칠맛과 짠맛 구별을 모호하게 하시는 듯 하고요. 굉장히 농축된 감칠맛을 짜다고 착각하시죠. 파스타도 보통 한국의 국보다 염도가 훨씬 낮은데 짜다고 직결되고요. ‘단짠’의 짠맛하고 순수 감칠맛의 짠 느낌을 구분하기 어려워하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거기 맞춰 연하게 낼 수는 없으니 진하게 갈 수밖에 없어요.”
파인다이닝의 격변기 속, 충돌하고 공명하며 나아가는 방법
알라 프리마는 미쉐린 스타라는 과업과 고유한 요리의 방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좀 센 질문을 던졌다.
미쉐린 2스타를 8년째 유지 중입니다. 3스타는 왜 못 받으시나요.
“(웃음)잔인한 질문이시네요. 투자를 더 못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제서야 미식 평가 기관이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어떤 요리를 맡은 셰프 한 명이 같은 걸 몇 천 번 반복해서 빈틈없는 플레이팅에 이르는 것, 그게 3스타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메뉴를 자주 바꾸면 안 되죠. 저는 (계절 메뉴가 많고 구성을) 러프하게 하는 편이라 그 방향하고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요. 맞춰가는 중입니다.”
격변하는 파인 다이닝의 시대를 헤쳐나가고 있는 알라 프리마와 김진혁 셰프
한국 요식업, 특히 파인다이닝의 어려움은 직원의 부족이다. 별을 달면 후보자들이 끊이지 않고 지원할 것 같지만 옛말이다. 구하기 어렵고 사직도 빠르다.
직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많을 때는 주방만 16명, 적을 때는 10명이에요. 10명으로는 힘들어요. 인원이 모자라면 손님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죠. (아시다시피 한국의 상황에서 무급인) 인턴은 당연히 없고, 2주 트라이얼은 최저임금 적용해요. 최저는 다 지키고 있어야죠.”
직원들이 그만두고 나가면 어디로 가요.
“일본이요. 제가 일본에서 걸어온 길을 보고 가고 싶어지는 거죠. 제가 잘못된 희망을 줬나 봐요(웃음). 나중에 다 훌륭한 사고를 칠 친구들이죠. 응원합니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시원시원하다. 어려운 대목도 솔직하다.
존경하는 셰프가 있으신가요.
"사실 정말 없습니다. 강하게 자극받는 분은 페란 아드리아와 르네 레드제피예요.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들 같아요. 장르하고 상관없이. 금수저도 아니었고,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조’ 속의 스타일보다는 재료를 향한 직관과 디테일한 접근으로 완성되는 알라 프리마의 디시
업계에서 ‘김진혁은 천재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글쎄요. 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냐고요? 만드는 요리에 고정된 패턴이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요. 어떤 (큰) 셰프의 영향력 같은 느낌, 이런 게 없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냥 독학이에요. 파스타도 누구한테 배운 적 없어요. 필드에서 거칠게, 해야 되는 상황에서 익혔죠. 지금 나이보다 15살 어렸을 때 이런 요리들을 했다면 제가 천재라고 제 입으로 하고 다닐 것 같아요. 지금 이 나이에 요리를 좀 한다고 천재는 어울리지 않죠(웃음).”
웃지만 진지했다. 천재적이란 말을 들을 나이와 경력이 아니란 걸 의식하는 듯했다.
고기 소싱은 어떻습니까.
“비둘기를 제일 좋아해서 사용하고 싶은데 법적으로 유통이 안 돼요. 사육해서 가축으로 등록하는 법제화 자체가 안 돼 있거든요. 또 서양식 조리에 어울리는 닭고기도 사용하고 싶은데, 한국의 닭 품종과 사육 방식은 대부분 한식에 맞춰져 있어 활용이 어려워요. 돼지고기는 서양식 로스팅을 하면 기름 맛이 흐리고 풍미가 약해요. 이베리코를 주로 썼고 국산도 써봤는데 한국 돼지는 스테이크처럼 하기엔 좀 아쉬워요. 양고기는 수입업자들이 향을 제거한 어린 양만 들여오다 보니 재미가 없고요. 우리나라 다이닝의 문제가 여기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셰프가 재료를 고르는 문제가 곧 개성인데, 그 개성이 자꾸 말살되는 거죠.”
한우는요?
“맛이 좋은데 다양성이 부족하고 요즘은 어느 부위든 비슷비슷해요. 우설만 먹어도 느끼할 정도니까요. 런치에는 호주산 럼프를 쓰는데, 와일드한 육향과 적절한 마블링이 있어서 손님 만족도가 높아요. 처음 쓸 때보다 단가가 두 배로 올랐지만요.”
재료를 바라보는 소신과 새로움을 향한 추구가 지금의 알라 프리마를 지탱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술이었는데 작년에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최악으로 가기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죠. 지금은 절주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혼자 잘 놀아요. 음악은 가리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락, 헤비메탈 세대예요. 축구는 바르셀로나 광팬이에요. 챔피언스리그는 새벽 4시에도 챙겨봐요.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절박하잖아요. 어떤 정서적으로. 그게 사랑하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
김진혁 셰프는 알라 프리마 너머로, 더 작은 주방과 예술이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알라프리마를 평생 할 생각이신가요.
“아니요. 가게가 전성기일 때, 잘하는 스태프 요리사에게 “한번 해볼래” 하고 맡기고 싶어요. 서양에는 그런 사례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일주일에 3일 영업하는 작은 캐주얼한 가게에서 라구 끓이고 캉파뉴를 굽고. 교토 미술대학에 가서 도자기 그림을 공부하거나. 옛날 일본 접시 보면 이름 없는 장인이 그린 그림이 있잖아요. 단순한 도형인데 표정이 있고, 그런 직공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