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으로 이어온 발효를 어떻게 기록하고, 다음의 기술로 연결할 것인가, 정혜민 셰프와 발효연구가 Jason White가 한국의 F&B 리더들과 함께 MINGCHU의 첫 번째 ‘Culinary Gathering’을 마쳤다.
지난 9월 14일 서울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MINGCHU Korea의 첫 번째 ‘Culinary Gathering’이 열렸다. MINGCHU Korea Culinary Gathering은 셰프를 중심으로 F&B 관계자와 연구자, 생산자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누군가의 주방이나 작업실에 머물던 경험이 일회성 교류로 끝나지 않고 기록되고 공유되어, 또 다른 실험과 협업으로 이어지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이다.
Mingchu Korea의 이정윤 디렉터
Mingchu Korea의 박지윤 마케팅 매니저
첫 번째 주제는 ‘Fermentation by Design — 발효는 기다림이 아니라 설계다’로, 오랫동안 사람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전승되어 온 발효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들여다봤다. 맛과 향의 변화를 판단하는 감각은 어떻게 생겨나고, 그것을 기록과 데이터의 언어로 옮기려면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온도와 시간, 미생물과 환경 같은 수많은 변수는 어디까지 통제해야 하는지. 동시에 기록과 표준화가 발효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수 있는지도 질문했다. 이날 연사로는 발효 R&D 셰프 정혜민과 발효 디렉터 Jason White가 참여했고, 셰프와 F&B R&D 관계자, 연구자, 생산자 등이 함께 강의와 패널 대화,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Mingchu Culinary Gathering의 첫 번쨰 연사, 정혜민 셰프
정혜민 셰프: 잊힌 것을 다시 식탁으로, 감각의 발효를 기록 가능한 언어로
호주 Attica와 덴마크 108, noma 테스트 키친을 거쳐 서울 B3713과 한식문화연구소 Common Era에서 R&D를 이어온 정혜민 셰프는 한국의 누룩과 장, 전통주를 비롯한 다양한 발효 방식을 실험하면서 감각으로 전승된 지식을 기록하고 재현 가능한 형태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없는 것을 만들고, 잊힌 것을 다시 꺼내는 것이 R&D다
정혜민 셰프가 고민한 것은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갈 때 생기는 작은 모순이었다. 세계의 레스토랑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버터나 다양한 유지류는 분명 맛있는 재료지만, 한식과 결합하면 종종 원래의 맛을 가리거나 음식 전체를 ‘퓨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음식 문화 외부의 요소를 단순히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답일까.
그 과정에서 누룩을 이용한 ‘버터 역할을 하는 재료’가 탄생했다. 누룩의 종류와 사용량, 익힘 정도를 조절하면서 버터처럼 농후한 풍미와 질감을 내되, 한식에 넣었을 때 그 맛을 덮는 대신 오히려 끌어올릴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 정 셰프에게 R&D란 전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것, 한때 존재했지만 잊힌 것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을 오늘의 식탁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것까지 모두 R&D의 영역이었다.
이 관점은 식초나 장 같은 보다 익숙한 발효로도 이어졌다. 한국의 발효는 본래 집 안에 있었다. 집집마다 매실청을 만들고 김치를 담갔고, 그 김치 속에는 1년, 3년, 5년, 때로는 10년을 묵힌 간장과 젓갈, 액젓이 겹겹이 들어갔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른 레시피가 있었고 그 차이가 곧 각자의 맛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이러한 일상적 발효가 점차 사라지고, 직접 담그는 대신 완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 셰프에게 중요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시 이런 시도를 이어갈 수 있을까”였다.
그녀의 요리 역시 같은 관점이다. 한 해에 일주일 남짓 피고 사라지는 목련을 보며 그 짧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음식으로 옮겼고, 사과 한 종류만을 ‘사과’라고 인식하는 대신 계절에 따라 등장하는 여러 품종의 서로 다른 질감과 맛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사과에 발효한 소스를 곁들였다. 누룩으로 새로운 질감의 재료를 만들고, 호박의 여러 부분을 활용하고, 서로 다른 감자의 맛을 비교하고, 소금과 버터에 효모를 접목하는 실험도 이어졌다. 그녀에게 발효는 재료와 계절을 조금 더 세밀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그리고 R&D의 출발점은 반드시 연구실 안에 있지 않았다. 길에서 본 꽃, 농장에서 먹어본 사과, 생산자와 나눈 고민, 어느 식당에서 맛본 젓갈도 모두 시작점이 됐다. “요즘 이런 게 맛있더라”, “이게 요즘 고민이다”, “오늘 꽃이 예쁘다”처럼 사소한 대화도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완성된 결과보다 관찰과 소통에서 출발하는 과정 자체가 정 셰프가 말하는 R&D다.
Mingchu Culinary Gathering을 통해 발효와 요리에 관한 인사이트를 나누는 정혜민 셰프
셰프는 생산자와 식탁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
정혜민 셰프의 활동은 최근 레스토랑의 R&D에서 지역과 생산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한 지역 식당에서 들은 고민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나는 생선을 사용해 젓갈과 액젓을 담그고 싶었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원하는 만큼 분해와 숙성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외부에서 사용하는 코지를 넣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 셰프는 한국에서 술을 빚을 때 쌀과 누룩을 사용해 효소의 작용을 끌어내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다. 생선이 가진 수분을 조정하고 쌀과 누룩에서 얻은 효소의 힘을 활용해, 기존 젓갈과 액젓이 지닌 방향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발효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했다.
장 숙성도 마찬가지다. 같은 메주를 사용하고 얼핏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데 왜 생산자마다 장맛은 다를까. 정 셰프는 콩을 물에 얼마나 불렸는지, 어떻게 익혔는지, 얼마 동안 식혔는지, 얼마나 으깼는지부터 메주가 마르며 수분을 얼마나 잃었는지까지 살폈다. 처음 3kg이던 메주가 최종적으로 1kg이 됐다면 사라진 수분을 어떻게 계산해 다시 물의 양을 정해야 할지, 관습적으로 15%, 18%, 20%를 사용하는 염도를 더 낮출 수는 없는지, 그 환경에서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도 함께 관찰했다. 즉 ‘전통 레시피’를 고정된 숫자로 보지 않고, 이 비율이 만들어진 환경과 과정을 다시 검토하며 원인을 분석했다.
셰프는 생산자가 이미 잘 만들고 있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의 식탁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정 셰프는 지역에서 만난 맛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울의 식탁까지 가져오고, 사람들이 그 맛을 알게 되면 생산자가 다시 수익을 얻어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농장을 직접 찾아가고, 장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생산자가 만든 메주와 간장, 고추장을 비교해 맛본다. 오랜 경험을 가진 생산자들이 매해 달라지는 결과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이번에는 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나왔다”고 다시 실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녀는 ‘균일함’과 ‘다양성’ 사이의 선택을 강조한다. 한국의 발효 식품은 같은 생산자, 같은 제품, 같은 해의 결과물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레스토랑의 입장에서는 매번 같은 품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분명 불편한 요소다. 특정 균을 선택적으로 사용해 언제나 거의 동일한 맛을 내는 제품이 운영 측면에서는 훨씬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균일함이 한국 발효가 가진 문화적 특성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걸 택할 것이냐, 아니면 문화가 가득 담긴 걸 선택할 것이냐. 이건 정말 셰프의 몫인 것 같아요.”
정 셰프는 최근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전통 방식의 태안 자염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그 소금으로 다시 액젓을 담그고, 화학적 처리를 최소화하며 김을 기르는 생산자를 찾아가 그 김의 맛을 물과 기름, 식초에 각각 추출해본다. 비율과 온도를 바꾸어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실험하고, 다시 하나의 제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살핀다. 누군가에게는 그 기록이 새로운 요리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국에 이런 생산자가 있었구나”라는 발견이 될 수 있다. 지식이 다시 다른 사람의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 지금 정 셰프가 집중하는 부분이다.
Mingchu Culinary Gathering에 참여한 한국의 F&B 관계자들
‘야생’과 ‘통제’ 사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한다는 것
정혜민 셰프에게 발효를 ‘설계한다’는 것은 환경을 통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미생물이 함께 작동하고 지역과 계절, 집집마다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발효에 ‘통제’라는 개념이 과연 맞을까. 정 셰프가 바라보는 한국 장 발효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균과의 공생이다. 하나의 선택된 균을 안정적으로 증식시키는 방식과 달리, 메주와 누룩에서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동시에 관여하며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결과의 차이는 실패가 아니라 한국 발효를 구성해온 본질 중 하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는 것이 답도 아니다. 과거 장을 담그던 1세대가 숫자와 매뉴얼을 남기지 않아도 발효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발효가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반복되는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며 이미 몸 안에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직접 공유하지 않은 다음 세대에게는 같은 방식만으로 지식을 이어가기 어렵다.
“셰프들은 좀 더 문서화를 시켜서, 다른 사람들이 이것만 보고도 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에서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다음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온도와 수분, 염도, 시간, 재료의 상태를 남기면 다음 사람은 그 기록에서 다시 다른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감각을 제거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감각이 축적되는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기록인 셈이다.
‘우리 것’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정 셰프는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코지와 누룩의 경계, 현대의 기술을 사용한 장을 어디까지 전통으로 볼 수 있는지를 완벽히 규정하는 것보다 그 문화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정의할까보다, 앞으로 어떻게 지켜갈까에 조금 더 집중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과거에는 먹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아 거의 사라진 배추뿌리 같은 재료를 다시 식탁에 올리고, 잊힌 조리법을 현재의 언어로 보여주고, 작은 생산자의 장과 누룩을 셰프들이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오늘 다시 먹고, 만들고, 이야기하게 하는 일이라고 정혜민 셰프는 강조한다.
Mingchu Culinary Gathering의 첫 번쨰 연사, Jason White 발효연구가
Jason White: “코지가 하나의 색이라면, 누룩과 메주는 무지개다”
약 20년 동안 파인다이닝의 발효 R&D 랩부터 세계 여러 지역의 공동체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해온 Jason White의 강의는 “이 모든 연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헀다. 발효는 자연에서 시작되었고 오랫동안 인간의 일상 속에 존재했는데, 오늘날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처럼 다뤄지고 있다. White는 자신의 커리어와 세계 곳곳에서의 경험, 그리고 한국에서 발견한 발효의 문화적 의미를 따라가며 혁신과 전통, 자연과 통제 사이의 관계를 풀어냈다.
혁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R&D
White가 오랜 시간 세계적인 레스토랑과 주방에서 일하며 ‘접근성’을 고민하게 됐다. 자신은 처음에 왜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이 연구는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문득 든 생각은 그의 방향을 바꿨다. 새로운 맛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면 그 혁신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혁신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혁신이 고작 백 명 정도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때 White는 자신이 할 수 있는 R&D가 레스토랑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맛있는 소스 하나를 더 만드는 동시에 한 지역이 더 나은 음식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도울 수도 있고,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음식 문화를 지키는 데 자신의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의 R&D 대상은 음식 한 접시에서 커뮤니티와 음식 시스템 전체로 넓어졌다.
유명 셰프들과의 협업 방식도 바뀌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셰프와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도착한 뒤 함께 시장을 걷고, 식재료를 보고, 농부와 생산자를 만났다. 특별 디너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스태프를 교육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면서 오직 연구와 탐구에 집중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혁신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White가 중요하게 본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유명 셰프일수록 자신의 무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모든 답을 알고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셰프의 작업을 찾아보고 자신의 R&D 팀에게 “저건 어떻게 하는 거지?”라고 묻는다. White의 협업은 바로 그 사적인 호기심을 밖으로 끌어내 서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발견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서로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오히려 깊은 교류와 배움이 가능했다.
그는 결국 집과 가구를 모두 정리하고 3년 반 동안 한 달에 두 나라, 많게는 세 나라씩 옮겨 다녔다. 전기도, 수도도, 냉장고도 없는 지역에서 일할 때도 있었다. 유명 레스토랑 안에서는 ‘고추도 알고 간장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세계 곳곳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그들의 음식을 맛보고 그들의 삶 속에서 재료를 접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꼭 ‘새로운 것’만이 진보는 아니에요.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동시에 과거로부터 전해진 지식을 보호해야 하죠. 음식은 셰프 한 명의 창작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 환경, 시장, 소비자와 수많은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하나의 커뮤니티이기 때문입니다.”
발효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Jason White
코지가 파란색이라면 누룩과 메주는 무지개다
발효도 ‘커뮤니티’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자연에서는 끊임없이 발효가 일어났고, 미생물은 인간과 오랜 시간 공존해왔다. 하지만 최근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발효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되면서,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자연스럽게 발효해 온 사람들의 지식이 마치 새롭게 발견된 기술처럼 소개되는 모습을 그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특히 최근 서양 요리계에서 혁신의 상징처럼 사용된 코지 역시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활용해온 재료지만, 본질적으로 특정 곰팡이를 곡물이나 콩에 배양하는 방식이다.
그가 한국에서 본 누룩과 메주는 하나의 미생물을 선별해 통제하는 세계와 달랐다. 여러 종류의 곰팡이와 박테리아, 효모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어떤 미생물은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만들고, 어떤 박테리아는 지방을 분해해 새로운 풍미를 끌어낸다. 효모는 과일을 연상시키는 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지가 하나의 색, 예를 들어 파란색이라면 누룩이나 메주는 무지개와도 같아요.”
White가 한국의 발효를 ‘자연과의 협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하나의 미생물을 완벽히 관리하는 대신 수많은 생명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맛을 만들어낸다. 그는 과거 자신의 발효 작업을 돌아보며 유리병과 금속 트레이, IKEA 선반을 정교하게 정리해놓고 세련된 레스토랑 안에서 작업하던 시절에는 그것 자체가 매우 진보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 뒤 발효를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그가 익숙했던 발효 랩은 정확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공간이었다. 박스 테이프를 반듯하게 자르고 작업대를 완벽하게 정돈하며 하루 16시간씩 일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특히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효가 주변 환경 전체를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옹기는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었다. 흙과 불을 다루는 장인의 기술이 발효 환경을 만드는 한 요소였고, 양력뿐 아니라 음력과 계절의 흐름을 살피며 담그는 시기를 결정하는 방식도 또 다른 지식 체계였다.
“한국의 발효는 굉장히 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처음 막걸리를 만들 때, 양조자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술을 만들고 있는지 종이에 써보라’고 했죠. 발효를 만드는 순간 사람의 마음과 계절, 시간까지 과정의 일부가 되는 거에요.”
모든 것을 강제로 제어하는 대신 재료가 가진 에너지와 주변 환경, 시간과 계절을 읽고 그 흐름을 활용하며, 예측 불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재료의 본질을 끌어내는 것. 전 세계의 여러 발효 문화를 경험해온 White에게 한국 발효가 특별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발효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Jason White
‘왜 꼭 그래야 하지?’ — 여름 메주에서 발효의 안전까지
그는 자신의 작업 중, 한국의 ‘여름 메주’를 소개했다. 처음 한국에서 메주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메주는 겨울에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추운 계절에는 미생물의 활동이 느려져 원치 않는 곰팡이나 미생물이 지나치게 빠르게 증식할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 하지만 White는 왜 꼭 그래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내일의식탁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과거에는 여름에도 메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업화와 여러 역사적 단절을 거치며 생활 속에 존재하던 일부 발효법이 사라지거나 잊힌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White는 곧바로 ‘그렇다면 지금도 여름 메주를 만드는 사람은 누가 있는가’를 찾아 나섰고, 실제 생산자들을 초청해 그들에게 직접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과정은 외부 연구자가 전통을 분석해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기술을 실제로 이어온 생산자가 지식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름에는 메주의 크기부터 달라져야 했다. 메주는 내부에서 수많은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덩어리가 클수록 내부 온도가 높아진다. 여기에 여름의 높은 외부 온도까지 더해지면 겨울 메주와 같은 크기와 방식으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생산자는 메주를 벽돌 형태가 아니라 가운데가 뚫린 도넛 형태로 만들어 열과 수분이 이동하는 방식을 달리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재료와 건조법이었다. 일반적인 콩 메주와 달리 곡물의 바깥 부분인 겨를 이용해 반죽하고, 완성한 도넛 모양의 메주를 쌀의 겉껍질인 왕겨 더미 속에 묻은 뒤 왕겨에 불을 붙였다. 왕겨는 처음에는 불꽃을 내지만 곧 붉은 숯처럼 천천히 타들어간다. 그 속에서 메주는 열을 받아 서서히 익고 마른다.
White는 이 방식 안에서 전통적인 경험 지식과 미생물학적 원리가 동시에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왕겨와 숯이 만들어내는 환경은 pH 변화에 영향을 주고, 특정한 원치 않는 미생물이 과도하게 자라는 것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메주 표면에 붙는 숯과 재 역시 외부 환경과 직접 맞닿는 것을 줄여주는 하나의 보호층처럼 기능한다. 동시에 필요한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은 유지한다. 기후와 계절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오래된 방식이 현대의 관점에서 봐도 대단히 정교한 ‘환경 설계’였던 셈이다.
행사의 진행, 통역을 맡은 이선민 모더레이터
참가자들과 질의 응답 중인 연사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White는 콤부차를 예로 들어 발효의 안전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콤부차는 스타터 컬처를 접종해 만드는 발효다. 따라서 설탕과 차를 섞어 실온에 그냥 두고 자연스럽게 발효되기를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다. 특히 당은 미생물에게 매우 좋은 먹이다. 때문에 오래되거나 오염 가능성이 있는 찻잎이나 다른 재료를 차갑게 추출한 뒤 그대로 발효에 넣으면 원하지 않는 미생물까지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White는 과일이나 채소 주스, 허브나 나무껍질 등 다양한 재료로 콤부차를 만들 수 있지만, 발효 전에 액체를 충분히 가열해 기존 미생물의 가능성을 줄인 뒤 원하는 스타터를 접종하는 방식을 권했다. 일정 농도에서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소금과 달리, 당은 다양한 미생물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맛을 설계할 때는 미생물뿐 아니라 재료의 구성까지 이해해야 한다. 지방이 많은 콩을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면 곰팡이가 지방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치즈를 연상시키는 향이 생길 수 있다. 치즈에서는 매력적인 향이라도 간장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강도로 나타난다면 먹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향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방 함량이 낮은 콩을 선택하는 식으로 원료 단계부터 설계를 바꿀 수 있다.
결국 White가 말하는 발효의 ‘자연스러움’과 ‘설계’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한국의 누룩과 메주처럼 복잡한 미생물 생태계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되, 그 안에서 어떤 조건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오래된 생산자의 경험에서 배우는 동시에 위생, 온도, pH, 재료의 조성과 같은 요소를 읽어낼 수 있어야 전통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가 다시 실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으로 이어갈 수 있다.
참가자들과 질의 응답 중인 연사들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다음을 만드는 자리
첫 번째 MINGCHU Korea Culinary Gathering은 발효의 정답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정혜민 셰프가 생산자와 지역의 지식을 오늘의 식탁과 연결하고 그것을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방법을 이야기했고, Jason White는 전 세계의 레스토랑과 공동체를 오가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발효를 자연과 인간, 미생물과 지역 문화가 함께 만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봤다. 지식은 혼자 가지고 있을 때보다 질문하고 나누고 다시 실험할 때 다음 단계로 움직인다는 데에 두 연사의 마음이 닿았다.
서로 아이디어와 생각을 나누는 자리, Mingchu Korea Culinary Gathering
강연이 끝난 뒤에도 현장에서는 셰프와 생산자, 연구자, F&B 관계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누군가의 오랜 경험은 다른 사람의 새로운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은 또 다른 실험의 시작이 됐다. MINGCHU Korea Culinary Gathering은 이번 첫 번째 이벤트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를 통해 현장의 사람과 경험을 연결하고, 서로 배우고 다시 실험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