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에 손꼽히는 중식당을 세운 화교 2세가 걸어온 길을 들어봤다.
가난한 화교들은 해외 이주 초기에 식당을 열거나 식당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 갔다. 이런 화교 요리사들은 현지인에게 중화요리에 관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소개할 주인공도 그런 길을 걸은 요리사 중 한 명이다. 바로 올해 70세인 왕육성(王育誠) 요리사다.
왕 셰프는 서울 마포구에서 ‘미쉐린 가이드’에 손꼽히는 중식당 ‘진진(津津)’을 운영한다. 그의 일생은 수많은 중국 이민자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톈진에서 대장장이로 일했으나 한국전쟁 전에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전쟁이 발발해 이민자가 됐다.
사실 한국 사회는 1950~1960년대에 이주민에게 매우 배타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론 중국과 무역을 제재하고 대내적으론 한국에 남은 중국인과 화교의 부동산 매매를 금지했다. 이 때문에 화교들은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것 외엔 특별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반세기 동안 한국의 고속 성장을 지켜본 왕 셰프는 “부동산 매매가 가능한 시점이 됐을 땐 가장 유리한 투자 시점을 이미 놓친 뒤였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그는 일찍이 주방에서 경력을 쌓아 대형 호텔 주방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곤 은퇴한 후 식당을 열었다. 여긴 과거 버드나무가 늘어서고 하천이 흘러 ‘양화진’으로 불렸다. 그래서 아버지의 고향인 톈진의 ‘진’과 양화진의 ‘진’을 따서 식당 이름을 ‘진진’으로 지었다.
중식 거리를 꿈꾸다
‘진진’은 올해 ‘미쉐린 가이드’가 가격 대비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선정하는 빕 구르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메뉴와 인테리어를 단순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메뉴는 한 페이지에 담길 만큼 간결하게 구성했다. 인테리어도 검은색과 빨간색을 섞어 화려하지 않게 꾸몄다.
중식당 ‘진진’은 메뉴를 한 페이지로 간결하게 구성했다.
“식당 운영이 힘들지 않으세요? 호텔을 떠난 후에 식당을 개업하셨잖아요 (MINGCHU)?”
“호텔 일이 레스토랑 운영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받는 일이에요. 호텔 손님은 귀빈이라 실수하면 사과한다고 끝나지 않죠 (왕 셰프).”
‘레스토랑 운영하기’ vs ‘대형 호텔에서 근무하기.’ 어느 쪽이 더 힘들까? 보통은 자영업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양 셰프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다른 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받기도 하지만 사업하면서 가족과 제자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원자재 공급망과 사업 운영에 필요한 인맥을 쌓았다. 가게를 세울 자리론 개발 중이던 홍대 상권 외곽 지역을 택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인기 상권은 명동이었고 강남은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지금 번성한 홍대 상권을 보면 그의 뛰어난 안목이 돋보인다.
왕 셰프는 현재 정통 중식 중심의 ‘진진가연’(본관)과 짜장면과 짬뽕을 판매하는 ‘진진야연’(서교동 진향)을 운영한다. 두 식당은 모두 서교동에 있다. 여긴 이곳 말고도 중식당이 몰린 지역이다. 중식당이 서울의 장충동 족발 거리와 경희대 파전 거리처럼 인근에 모여 경쟁을 벌인다.
왕 셰프는 중화요리 거리를 만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인의 음식과 한국인의 끈기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왕 셰프는 “홍대에 중화요리 거리를 조성하고 싶다”면서 포부를 밝혔다.
‘진진’의 대표 중화요리
‘진진’은 한국의 관례를 고려해 대표 메뉴와 함께 무료 반찬을 제공한다. 하지만 중식 스타일로 자차이와 고수, 볶은 땅콩을 반찬으로 준다. 대표 요리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중식이다. 특히 깐풍기와 멘보샤, 팔보채가 인기다. 왕 셰프가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메뉴는 깐풍기다. 이 요리는 사천식 깐풍기의 특징을 살린 것으로 치킨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다. 중식에 빠질 수 없는 우묵한 프라이팬을 고온에 달군 뒤 닭고기 조각을 노릇하게 튀기고 파와 생강, 마늘, 마른 고추를 넣는다. 보통 한식에선 고춧가루로 마른 고추를 대신하지만 이 요리에선 통째로 넣어 멋을 살린다.
멘보샤는 ‘진진’의 대표 요리이자 요즘 중식당의 필수 메뉴다. 식빵을 작은 정사각형으로 자른 뒤 가운데 새우 속을 넣고 기름에 튀기는 요리다. 관건은 튀기는 시간과 온도, 식빵이다. 음식을 1초만 더 튀기거나 반죽의 당도가 조금만 높아도 타버리기 쉽고 반대로 기름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빵이 기름을 흡수해 바삭하지 않게 된다. 멘보샤는 홍콩 요리로 왕 셰프가 호텔에서 근무할 때 스승에게 배운 메뉴다. 홍콩인들은 이 요리를 ‘새우 토스트’라고 부르며 추억의 요리로 인식한다. 멘보샤는 이곳뿐 아니라 다른 중식당에서도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 무기로 자리 잡았다.
깐풍기.
멘보샤.
마지막으로 소개할 대표 요리는 팔보채다. 왕 셰프가 특별히 추천하는 메뉴다. 새우와 가리비, 전복, 브로콜리가 주재료다. 걸쭉한 전분 소스가 재료를 감싸고 해산물의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왕 셰프는 “한국은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 특성상 전복이 특히 맛있다”고 말했다. 전복은 제주도와 전라남도산이 유명하다. 국내산 전복은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셰프가 중식 스타일로 조리하면 더 풍부한 맛을 낸다.
팔보채.
이 밖에도 마파두부와 깐쇼새우, 마의상수, 어향가지, 광둥식 볶음면, 생선찜이 있다. 이 메뉴는 한국인에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요리고 중화권 관광객에겐 친근하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여러 소스를 첨가해 다양한 맛을 자아낸다.
왕 셰프는 레스토랑을 확장해 또 다른 지점을 차린 것에 관해 “제자를 양성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자 중에는 한국인도 있고 중국인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성격이 급해 더 빨리 성과를 내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인정했다. 현재 주방장을 맡은 사람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는 코로나19 시기에 짜장면과 짬뽕을 판매하는 ‘서교동 진향’을 개업했다. 호텔에서 은퇴한 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국 짜장면은 중국 둥베이의 재료인 춘장을 볶아 만든 소스를 면에 부어 먹는 요리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단맛이 들어가는 맛으로 바뀌었다. 초기 중국 이민자가 정착한 인천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식당 ‘공화춘’이 원조로 여겨진다. 1908년 설립 당시 이름이 산둥회관이었다가 1911년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공화춘’으로 바뀌었다. 한국 짜장면이 중국 산둥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왕 셰프는 지금까지도 중화요리를 알리는 삶을 즐긴다. 그에게 짜장면 전문점을 운영하는 것은 중식당을 운영하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다.
왕 셰프는 중화요리를 홍보하는 삶을 즐기고 있다.
고정 관념을 깨는 메뉴
왕 셰프는 메뉴 수십 가지를 취급하는 다른 중식당과 다르게 메뉴를 10가지밖에 내놓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에 관해 적은 수의 요리가 오히려 관리하기 훨씬 더 좋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원자재 관리가 더 쉽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메뉴를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 셰프는 일하면서 얻은 자신만의 비즈니스 노하우를 따라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은 중화요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탕수육을 떠올리는데 탕수육은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렵고 다른 중식당과의 차별화한다는 이유로 판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고급 식재료와 기술로 좋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음식을 내놓았다. 광둥식과 쓰촨식 조리법으로 만드는 음식이다. 정리하자면 훌륭한 맛과 메뉴와 인테리어의 단순화, 가격 경쟁력이 있는 메뉴 배치가 중국 이민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생존전략이었다.